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사진)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2>나폴레옹의 남성 콤플렉스와 출신 열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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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남성 콤플렉스가 있었을까. 19세기 유럽을 지배하고 프랑스 황제에까지 오른 나폴레옹. 그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말을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그의 모습은 도전정신의 상징이 돼 1970년대 한국의 중고교생 참고서 표지를 장식했다. 동방의 청소년에게도 영웅으로 부각된 그는 충격적인 고민이 있었다.
불임 구설수다. 황제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입방아를 참새들이 파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찌었다. ‘카더라’ 통신의 진원지는 뜻밖에도 나폴레옹이 목숨처럼 사랑한 아내 조세핀이었다. 그녀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 위기의식을 느꼈다. 대를 이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제국을 다스릴 왕자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마흔 살 언저리의 조세핀은 생산능력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눈을 밖으로 돌렸다. 프랑스의 속국이나 다름없던 폴란드다. 그곳에서 보는 순간 눈을 떼지 못했던 한 여인을 떠올렸다. 백옥 같은 피부에 관능적인 미모의 20대 유부녀 발레브시키다. 그녀의 남편은 이가 빠진 70대 귀족이다. 나폴레옹은 부부를 이혼시킨 뒤 여인을 파리로 데려왔다. 곧 그녀는 아들을 낳는다.
사랑을 잃을까 전전긍긍한 조세핀은 남편과 정부(情婦)를 코너로 몰 계략을 꾸민다. 주위에 “너만 알고 있어”라는 전제조건을 단 뒤 말한다. “나폴레옹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는 불임이다. 내가 자 봐서 안다.” 폴란드 여인이 낳은 아들은 나폴레옹의 씨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아들은 내 핏줄”이라는 말로 일축한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 성을 따랐다.
불임은 피임을 하지 않는 정상 성생활을 1년 이상 했음에도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인은 주로 여성에게 있지만 남성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요즘엔 남성 불임을 정액, 호르몬, 영상, 생화학, 유전자 검사 등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과학적 검사법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불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은 아이를 낳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불임이었을까. 1927년 TIME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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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의 성기가 뉴욕에서 전시됐다. 당시 TIME지의 기사에는 ‘성기는 가죽 구두끈 토막 같았다’고 했다. 그의 심벌이 작았다는 의미다. 나폴레옹의 상징은 큰 수난을 겪었다. 나폴레옹은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뒀다, 사망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한 영국인 의사는 그의 성기를 절단해 코르시카 섬의 한 신부에게 전했다. 성기는 우여곡절 끝에 1927년 뉴욕에서 전시됐다. 또 50년이 지난 1977년에는 뉴욕의 비뇨기과 의사가 3000 달러에 구입했다. 지금 그의 심벌의 가치는 폭등했다. TIME지는 2011년에 10만 달러로 예상했다.
조세핀의 극단적 주장은 일단 먹혔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의 여동생을 마음에 두었다. 매파를 넣어 열다섯 살 소녀에게 구애를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황제는 남자의 구실을 못한다는 소문을 믿었다. 혼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남자로서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녀 마리아 루이제와의 혼인을 추진한다.
동시에 조세핀과는 이혼한다. 조세핀은 변한 남자의 마음에 기절한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 제국을 이을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황후는 더 이상 보호받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과의 호적을 정리한 뒤 열여덟 살 황녀와 재혼한다. 젊은 황후는 1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조세핀의 주장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불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이혼했지만 잊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은 배경이 없었다. 외모도, 집안도, 출신지도 변변치 못했다. 파리에 처음 온 나폴레옹은 작은 키에 삐쩍 마른 가난한 군인이었다. 출생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간 코르시카 섬이었다. 하지만 야망과 배포가 있었다.
꿈에 한 발 다가설 디딤돌이 조세핀이었다. 26세의 청년 장군 나폴레옹이 만난 32세 과부 조세핀은 재력에다 사교술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조세핀의 남편은 돈 많은 귀족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때 처형된 알렉상드로 보우아네이다. 그녀는 재산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의 연인으로 지내다 신흥 권력자 나폴레옹을 만났다. 남성편력이 화려한 조세핀에게 청년 장군 나폴레옹은 쏙 빠졌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과의 전쟁을 하러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날 밤, 조세핀을 이끌고 시장실로 갔다. 자고 있는 시장을 억지로 깨워 결혼서약을 했다. 결혼증명서에는 동갑으로 적었다. 나폴레옹 자신은 2살을 올리고, 조세핀은 4살을 내린 것이다.
나폴레옹은 처음에는 돈과 인맥이 필요해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녀의 체취에 매료됐다. 전쟁터에서도 연인의 페르몬 향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다. “일주일 후에 돌아가겠소. 그때까지 몸을 씻지 말고 기다려 주시오. 당신의 냄새가 그립소.” 프랑스 속담에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다.
자유분방한 조세핀은 결혼 1년도 안 돼 젊은 기병대 장교와 눈이 맞았다. 아내에게 애인이 생겼음을 안 나폴레옹은 격분했다. 전쟁터에 있는 그는 편지로 따진다. “그대의 영혼을 빼앗고, 당신의 일상을 지배하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멋진 새 연인이 누구란 말이오?”
나폴레옹은 죽을 때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찾은 여인이 조세핀이다.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눈은 조세핀 초상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프랑스---”를 말했다. 그리고 “군대, 군대의 선두에는… 조세핀”이라고 되뇌었다.
글쓴이 이정택은?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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