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농가의 적’ 야생동물에 우는 농심

가뭄에 주야로 습격 설상가상…농민들-유해조수 '생존싸움'
박원정 | awayon@naver.com | 입력 2015-12-10 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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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들의 습격을 받은 옥수수밭의 옥수수가 70%이상 쓰러져 있다.         <사진제공=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사무소>


당국은 산비둘기-멧돼지 편인가?

일회성 포획단 등 효과 적어
개체 수 조사-실질적 보상 나서야
 

 

“가뭄에 소출이 반타작인데…그나마 멧돼지, 노루가 다 먹어버렸다.” 

 

농민들의 복장이 터질 일이다. 충청도를 비롯 강원도 등 중부지방에선 유례없는 가뭄으로 올 농사를 망쳤다. 특히 충남 8개 시·군은 밭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논농사마저도 시원찮은 편이다.


그런 와중에 올해도 수확 철에 농민들의 ‘공공의 적’인 야생동물의 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들판의 논부터 콩밭, 고구마 밭, 그리고 과수원까지 쑥대밭이 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손도 부족한데 봄엔 멧비둘기, 꿩하고 싸우다가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멧돼지, 고라니, 노루 등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지금 환경부는 합동단속반을 꾸리고 포상금까지 내걸어 야생동물 밀렵·밀거래를 집중단속하고 있다. 여기엔 산양 등 멸종위기종 보호목적도 있지만, 수렵지역을 지정해 야생동물 개체 수의 감소효과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에 제한된 구역에서의 일시적 수렵 허가로는 반복되는 농가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 유해 조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적당한 개체수 유지와 농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

 

△까치는 크고 맛있는 사과만을 골라 피해를 입힌다.  

△ 꿩들의 피해를 입은 인삼밭.

△한 양파밭이 고라니가 씨앗을 다 파먹어

싹조차 나지 않았다. <사진제공=서산시청

환경생태과 조남황 주무관>  

 

 

 

 

 










비둘기, 꿩 때문에 콩을 세 번 심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연성호씨(69)는 올해도 6~7월 3000여 평의 밭과 논둑, 그리고 유휴지 등에 콩을 심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 심은 콩이 싹을 틀 무렵부터 전쟁은 시작됐다. 어떻게 알았는지–하기는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콩밭은 주변에서 날아온 멧비둘기와 꿩들의 편안한 먹이터로 변하고 말았다.


이쪽에서 쫓으면 저쪽으로 날아가고, 저쪽에서 쫓으면 이쪽으로 날아오는 그야말로 숨바꼭질만 하고 있었다. 일부 멧비둘기들은 전깃줄에 죽 앉아 늙은 농부 약을 올리기도 했다.


허수아비를 곳곳에 세우고 반짝이 줄을 늘여 놓았는데도 무용지물이다. 부인은 새벽에 눈만 뜨면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이 불청객들을 쫓아보지만 역부족, 약 40%정도는 고스란히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첫 파종에는 이들 부부를 비롯 이웃 동네 아주머니들 6명이 동원됐는데, 원래 빈 곳이 많아 2차 파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품을 4명 더 사서 다시 심었는데 여전히 날짐승들의 표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 2명과 함께 또 이틀간을 콩 심는데 땀을 흘려야 했고, 콩 파종에만 15일이 꼬박 걸렸다.


밭갈이와 두덩내기, 비닐 덮기 등을 제외하고도 콩씨를 비롯 인건비 등 파종에만 60만~70만 원이 들어갔다.

 

서울 북한산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야생동물들이 잡혔다. 위부

터 시계방 향으로 종로구 구기동의 멧돼지 가족들, 은평구  진관동

의 멧돼지와 고라니.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연구관>

이번엔 노루-고라니들이 벌떼같이 덤볐다
이곳은 야산도 별로 없고 왕복 8차선의 자동차전용도로는 물론 충북선이 지나가는 곳이다. 그럼에도 멧돼지는 물론 노루,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는 늘어나고 있고, 주변 농민들의 피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겨우 씨를 세운 논두렁이나 야산 쪽의 밭, 그리고 유휴지는 어김없이 이들 짐승들의 타깃으로 2차 피해를 피할 수가 없다.


콩이 크기도 전에 30% 정도는 이미 수확을 포기할 정도가 돼버렸다.


연씨는 견디다 못해 이웃한 농가와 합심해 30만원 씩 투자, 논 전체에 그물망을 쳤다. 말뚝을 박고 그물을 치는데 두 집 부부가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러나 그물망마저 소용이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노루나 고라니들이 그물망을 뛰어넘거나 머리로 받아 쓰러뜨린 다음 편안하게 뜯어먹어 버렸다.


연씨는 “이젠 산비둘기, 멧돼지, 노루가 짐승이 아니라 모두 원수다. 치가 떨린다”며 “여기 논 쪽에선 수확량의 50%도 못 건졌고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짐승의 먹잇감을 피한 논두렁의 콩들은 가뭄 속에서도 비교적 잘 여물었다.


하지만 밭의 콩은 혹독한 가뭄으로 콩이 아예 달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달린 것도 익지를 않고 그냥 말라버렸다. 연씨는 “밭의 콩도 반타작”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경운기를 돌려 몇 차례 관정과 지하수 물을 퍼서 주었지만 심한 가뭄을 이길 수가 없었다. 유류비에 전기세만 날리고 이래저래 헛농사만 지은 셈이다.


수확기 논과 밭은 야생동물의 놀이터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은 천적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참새부터 멧비둘기, 까치. 노루에 이어 멧돼지까지 상위 포식자가 없어 마냥 번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도시의 길고양이나 야산의 들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전염병 전파가 우려되는 등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이렇게 야생동물·조수의 개체 수 증가는 농민들의 피해는 물론 인명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6년간 멧돼지와 고라니 등으로 인한 발생한 농작물 피해액은 640여억 원, 인명 피해도 잇따라 멧돼지 때문에 3명이 숨지고 30여 명이나 부상했다.


그러나 전국 각 시·군 담당자나 농민들은 이보다 피해규모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고하는 것보다 피해구제 범위에 들지 못해 아예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한 시청 담당자는 “피해신고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절차도 까다로워 농민들이 신고조차 못하고 당하고만 있다”며 “우리 시 같은 경우엔 매년 피해 건수나 피해액이 30%이상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답답하고 어이없는 통계”라고 고백할 정도다.


충북 괴산군은 산과 접한 논과 밭이 많은 곳이다. 이곳은 추수철만 되면 농경지가 전쟁터처럼 변해 버린다. 사리면 방축리의 70대 농부는 “논에는 이렇게 통로가 만들어지지. 길을 낸 것은 멧돼지고 이삭을 먹는 것은 고라니여. 거기에다 노루가 이리저리 논을 휘젓고 뛰어다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며 혀를 찬다.

 

고라니가 망쳐놓은 고구마 밭.

<사진제공=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사무소>

늘어나는 야생동물 "천적이 없다"
한때 산업화에 맞물린 개발과 포획 등으로 야생 동물과 조수가 급격하게 감소해 개체 수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적이 있었다. 그게 1970년대 후반이고, 이후 30여 년간 지속적인 단속과 노력으로 한반도는 이들의 천국이 됐다.


그러나 이젠 너무 많아진 야생동물과 조수로 당국과 농민이 갈등을 빚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까치부터 멧비둘기, 꿩,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이 농토 주변에 서식하면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파종기인 봄부터 수확기인 가을까지 1년 내내 농민들이 이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14년 기준 100ha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4.3마리라고 밝혔는데 2010년 3.5마리보다 0.8마리 더 많아진 수치다.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을 다 포함한 것이니 산과 농경지가 많은 지역은 더 많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는 7.2마리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라니는 100ha당 8.2마리로 늘었고 5년 사이 1.8마리가 많아졌다.

충남이 가장 높은 빈도수를 나타내고 있는데 무려 12.2마리나 된다.


그러나 이 집계도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숨어 있는 야생동물을 전부 찾아볼 수는 없기 때문에 실제는 이같은 집계보다는 훨씬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지자체가 운영하는 단기성 포획단만으로는 야생동물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 개체 수 증가에 대해 산림이 많이 우거졌고, 무엇보다 천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05년부터 분석


총기 관리 강화에 애꿎은 농민만 멍든다
올해 초 충남 세종시와 경기 화성시에서 일어난 총기사고 이후 강화된 총기 입ㆍ출고 지침 탓에 농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바뀐 규정이 당초 목적인 사고예방과는 거리가 멀고 정작 총기 사용이 필요할 때는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워 탁상행정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충북 충주에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최태경씨는 “지난해만 해도 소지한 공기총으로 위협해 까치를 쫓아버렸는데 규정이 바뀌어 공기총을 경찰서에 맡긴 뒤로는 출고하기조차 어려워졌다”며 “한창 바쁜 농번기에 총을 찾으러 동행할 사람을 구하러 다닌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올 3월 ‘유해조수 구제용 총기 입ㆍ출고 지침’을 개정하면서 과거 혼자 총을 찾게 한 것과 달리 유해조수포획단의 경우 2명, 개인 농가는 1명의 ‘참여인’을 대동하도록 총기 사용처 확인 절차를 변경했다.

 

경찰서마다 하루 출고할 수 있는 총기 수도 20정으로 제한하고 사용시간 역시 최대 자정까지만 허용했다. 총기 반출 과정이 너무 허술해 대형 인명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을 반영한 조치라고 한다.


나중에 경찰청은 총기 입ㆍ출고 지침을 다소 완화해 포획단은 3인이 아닌 2인 1조로 구성하고 개인 농가는 참여인과 전화 통화만으로 출고가 가능하게 바꿨다. 또 총기사용 시간을 주ㆍ야간으로 유연하게 나눠 야행성 동물에도 대처할 수 있게 했다.


환경부는 포상금 대폭 올리고 신고하라
농촌의 고통과는 별개로 환경부는 내년 3월 6일까지 강원 강릉시 등 22개 수렵장과 밀렵 우려지역 위주로 겨울철 야생동물 밀렵·밀거래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당국선 올해 5월 ‘밀렵신고 포상제도 운영지침’을 개정, 포상금을 대폭 올려가면서 멧돼지, 뱀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능적인 밀렵 행위를 막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밀렵을 신고할 경우, 종전에는 포상 기준금액이 20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또한 올무(새나 짐승을 잡는 올가미), 창애(주로 꿩을 잡는 타원형 덫) 등 밀렵도구를 수거하거나 신고하는 경우에도 밀렵도구 종류에 따라 포상금을 10배 가량 인상해 지급하도록 포상금을 현실화했다.


단속 강화로 밀렵·밀거래 적발 건수는 2010년 771건에서 2014년 310건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지능화되고 전문화된 밀렵·밀거래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한쪽에선 수렵장 등 운영으로 야생동물 희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72만여 마리가 포획됐다. 멧돼지는5만800마리가 죽었고, 고라니는 세배 이상인 16만 9500마리가 희생됐다. 숫자로 가장 많이 죽은 것은 30만 1700마리가 포획된 까치 등 조류다.


그러나 이 같은 공식적인 피해 집계보다 밀렵으로 당하는 숫자가 몇 배는 많을 것이다.


최종원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야생동물 밀렵·밀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주변의 불법 행위를 발견하면 신고하는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설치한 울타리.
농민들이 설치한 울타리.

                      <사진제공=춘천시 유통원예과 김영길 주무관>

그물망-조류 퇴치기 가지고는 효과 없다
1
년에 야생동물·조수 등 수십만 마리가 죽어가고, 농민들은 1년에 수백억 원의 재산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최근 6년 사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을 643억2900만 원이라고 밝혔는데,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보고되는 피해만 집계한 것으로 신고 되지 않는 소규모 피해가 더 많다고 농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싹을 따먹거나 심어놓은 종자를 파먹어 아예 농사를 포기한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농지를 망쳐놓기도 하는데 논에 웅덩이가 생기기도 하고 심하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해 농사까지 어렵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정부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 한 해 수백억씩의 피해가 나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새를 막는 망이나 조수 퇴치기, 전기 울타리 등 초보적인 방어 시설을 지원할 뿐이다. 시설 지원을 한 농가에 피해가 나면 보상이 없다.

 
동물 보호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피해 농민에게 보상을 하고 있는데, 농림축산식품부와 마찬가지로 500만 원 한도다. 그것도 인명 피해일 때고 농작물은 300만 원 한도가 고작이다.


그리고 야생동물 개체 수를 조절한다며 수렵기간과 지역을 정해 발표한다. 한 해 수만 마리씩의 야생동물이 죽어가고 있지만 환경부도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다.

 

 

△농민들이 설치한 울타리. 
△ 농민들이 울타리 등을 설치하고 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진제공=춘천시 유통원예과 김영길 주무관>

적정 개체 수 조사-파악한 후 대책 세우자
농민들은 생계가 달린 농사를 망쳐 울상인데, 한쪽선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감시활동도 마다않는다.
몇 년 전부터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해왔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과 적절한 농민 피해보상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적정 개체 수가 어느 수준인지 합동연구와 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피해 보상의 가이드라인도 낮춰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포획단 운영으로는 개체 수 조절에 역부족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사고위험을 무릅쓰고 야생동물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임시방편의 포획단 대신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제 적극적인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야생동물 때문에 한 해 2000억 원의 피해를 보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재해에 버금가는 피해를 막기 위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전북 김제시의회 김복남 부의장이 발의한 ‘김제시 유해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등 피해보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은 유해야생동물의 포획 포상금 지급기준을 마련, 유해야생동물의 개체 수 조절 및 안정적 농업경영을 도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경미디어 박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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