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교를 화실로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큰 키에 삭발한 모습으로 한눈에 봐도 예술가처럼 보였다. “화가는 눈과 가슴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화가라는 이름 외에 시민단체 대표로도 불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금강송의 모습 ‘색감’에 녹여내
홍경표 화가의 고향은 울진이다. 울진은 금강송이 유명한데, 금강송이란 단단하고 곧게 뻗은 소나무를 말한다. 사실 금강송은 화가가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여타 굴곡이 없이 직선으로 곧게 자라기 때문에 조형성을 강조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화가들은 곡선으로 자라는 안강송을 주로 그린다.
홍경표 화가는 원래 파도와 동해안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최근에 작업실을 옮기면서 가까이에 있는 금강송을 소재로 선택했다.
홍 화가는 “안강송은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인생의 굴곡사와도 잘 맞아 떨어지는 반면 금강송은 형태면에서 제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사람이니까 이곳의 풍광을 그려야겠지요”라면서 “금강송은 색이 독특하니까 색감으로 조형작업을 합니다.
색과 더불어 온갖 풍파를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온 금강송의 모습을 색에 녹여내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업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소나무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백 년 동안 온갖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소나무를 짧은 생의 작가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였다.
그는 “실제로 소나무와 마주 앉아있으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합니다. 스스로가 저 모습을 담아낼 자격이 있는지 몇 번이고 되묻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소나무와 깊은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파도, 거친 모습 이면에 담긴 순수함
그가 금강송을 그리기 전 주로 파도를 그렸을 때는 해안 근처에 컨테이너로 작업실을 짓고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바다의 염분 때문에 컨테이너 박스가 다 녹아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바다와 밀접한 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 파도를 그리다보니 파도 그림에 있어서는 많이 알려지는 작가가 됐다.
홍 화가의 작품 속 파도는 생명을 상징한다. 파도는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강하지만 순수함과 생명성이 있다. 이런 부분이 홍 화가의 작품과 닮아 있다.
게다가 파도는 모든 것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개혁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개혁성은 기존의 것을 망치고 새로운 세력이 기득권을 잡는 것이 아닌 기존의 세상에서 같이 살아나가는 개혁성을 띄고 있다.
그는 “파도는 세상 이치와 달리 생명을 일으키는 개혁성을 갖고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홍 화가는 금강송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형태의 조형미보다는 색의 조형미와 색의 두께로 표현하는 사실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파도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흰색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색이 담겨져 있다.
사회가 예술가에게 곁을 내줘야
작가는 대개 현실을 의식하는 발언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 발언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시민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고향에 내려왔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하 핵안사)’이라는 단체의 대표로 울진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울진은 이미 1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영 중으로 추가 원전 유치 신청을 한 상태였다. 그는 단체의 대표로서 9개월 동안 이에 대한 반대 촛불집회를 했고, 이후 울진은 유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소통이었고, 그의 활동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는 세상에 대한 의지였다.
그는 “경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분명히 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예술가에게 사회가 곁을 내줄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본인의 발언으로 인해 손해를 볼 수 있음에도 소신대로 말하는 사람, 그가 바로 홍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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