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탑골공원 뒷골목에도 우리의 오랜 기억을 간직한 곳이 존재한다. 낡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오밀조밀 들어선 작은 국밥집과 어두운 골목길은 아직도 7,80년대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낙원상가가 있는 종로구 낙원동의 풍경이다.
몇 십 년째 변하지 않았을 1500원짜리 국밥을 먹기 위해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머리 하얀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골목에는 전주집, 남원집, 부산집 이니 하는 국밥집들이 허연 김을 폴폴 풍기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돼지기름인지, 소기름인지 기름기에 번들거리는 좁은 여닫이문을 드르럭 하고 열면 5개도 채 되지 않을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 끼를 해결하는 객들이 보이고 낯모를 이방인과 합석도 그리 생경하지 않은 곳이다.
그 옆으로 돌아 나오면 쪽방들이 늘어선 골목과 골목 어귀에 늘어선 노점상들이 보인다. 옛날 파고다 극장이 있던 자리는 독서실로 변했다. 일명 ‘노인의 거리’ 모습이다.
그리고 그 골목을 돌아 다시 국밥골목이 있는 곳으로 가면 국내 최대의 악기 백화점이 있는 낙원상가의 낡고 빛바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낙원상가의 2층에는 악기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드럼, 기타, 피아노, 트럼펫과 같은 각종 악기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놓여있다.
지금은 아트시네마가 들어서 있는 그곳은 예전 허리우드 극장이 있던 곳이다. 아직 허리우드라는 구석진 외벽에 설치된 간판이 용케도 살아남아 관객들로 북적이던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공간은 이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쳤던 사람들과 그 곳에서의 삶도 변하게 될 것이다. 몇 명도 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열심히 돌아가던 예술영화전용극장의 영사기는 당분간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 쭈뼛거리던 사람들과 손에 익은 악기의 감촉을 추억하려 들른 양복 차림의 중년인과 엄마의 손을 잡고 자신의 첫 악기를 고르기 위해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난해인 2007년 3월 12일 서울시는 중구 숭례문 옆 남대문시장과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 옆 낙원상가를 세운상가, 동대문운동장 등과 함께 강북지역의 대표적인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해 관련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오랜 기억의 저장소도 변하는 것이다.
현재 종로구 낙원동의 조선시대 이름은 ‘원동(園洞)’이었다. 지금의 낙원동이 된 것은 1914년 일제가 서울의 지명을 다시 고치면서다. 이 당시 교동, 탑동, 어의동 일부와 한동, 관인방의 원동 일부를 합치면서 생겨났다.
낙원이라는 이름은 시내의 중심인데다 주변에 절골 및 탑골공원이라는 낙원지가 있다해서 원래 지명인 원동(園洞) 앞에 낙(樂)자를 붙여 생겨났다.
낙원동 241번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洋醫) 였던 계양병원이 있었던 곳이고 17번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種痘)를 실시해 천연두를 예방한 지석영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그 계양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추어탕집과 해장국집이 들어섰다.
58번지에는 조선조 숙종때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 있었으며, 교동초등학교는 옛날 인조의 사저인 어의궁이 있던 자리다. 그리고 1964년 낙원동 284번지 도로위에 낙원상가가 세워졌다.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낙원상가에 처음부터 악기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당구장이나 다방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악기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전 분야를 인위적으로 개편했다.
음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던 카페, 나이트클럽, 음악다방들이 관계 법령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때 많은 연주인들이 실직 했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음악인들이 모여 있던 곳이 바로 낙원상가의 당장구장이었다. 그 당구장에 모였던 음악인들이 하나, 둘 악기점을 차리면서 비로소 지금의 모습이 태어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 공간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사)문화우리가 경관보존 프로젝트를 통해 낙원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공간문화의 실천적 개선대안을 연구하기위해 cityscape trust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급변하는 도시 풍경과 일상을 기록하여 지역공동유산으로 남기는 대단위 아카이빙 작업이다.
낙원상가 도큐먼트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지난 3월에 시작된 세운상가에 이어 두 번째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30여명은 그 때부터 이 일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10월 24일에는 ‘낙원에서 노래하다’라는 콘서트를 통해 이 지역의 의미를 축제로 풀었다.
그리고 11월 1일에는 ‘낙원을 기록하다’라는 공개답사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낙원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록 작업을 이어갔다. 여기에 지난 11월 22일에는 ‘낙원을 말하다’라는 강연회를 통해 근대 이후 이 지역이 갖는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고찰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시간이 가면 사람도, 공간도 잊히기 마련이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지만 사회에서 밀려난 노인들이 하나, 둘 모이며 그들만의 또 다른 세상이 되기도 했던 낙원상가 일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직도 그곳은 산업화 시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던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도 아직까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새벽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먹던 1500원짜리 국밥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 곳에서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악기상가에는 여전히 악기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흔하디흔한 상업영화를 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 입안을 화끈거리게 만들 해물찜을 맛볼 수도 있다.
2008년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 문화우리는 그간 기록했던 모습들을 공개했다. 12월 17일전시회 오픈식을 시작으로 18일부터 23일까지 인사동 드림갤러리에서 낙원상가 도시경관기록보존 사업으로 기록된 사진과 영상물들을 전시하는 ‘낙원을 기록하다’ 전시회를 가진다.
이 전시회는 도시경관기록보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낙원상가지역의 도시경관적 특색과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자리로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선별해 낙원상가지역의 경관사진 및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문화가 담겨진 사진들로 전시된다. 영상부문에서는 낙원상가 상인분들 인터뷰 및 낙원상가 내?외부의 영상 등이 상영돼 이 곳 사람들의 삶과 문화,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이번 낙원상가지역 도시경관기록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자원활동가는 “6개월 동안 낙원상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어 좋았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성과물들이 전시회를 통해 나온다고 하니 가슴이 설레고 기쁘다. 전시회에 꼭 참여해 나의 사진을 보고싶다.”그간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그저 지나쳤던 공간의 풍경이 한 순간 변해 또 다른 낯설음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잊혀져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기록된다. 그리고 기억된다. 기억하려고만 하면 그 오랜 풍경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낙원을 기억하는 이 전시회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네이버 까페(http://cafe.naver.com/sewoondocument)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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