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 해결은 불편함에 진실이 있다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7-11-16 17: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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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평화상은 지금 온 인류가 직면하기 시작한 지구 온난화로 환경재앙과 그 위험성을 경고해온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에게 돌아갔다. 참 잘된 결정이며 축하할 일이다. 앨 고어는 이 영광스런 노벨 수상을 업고 다시 미국대선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지 말고 계속 환경운동의 전도사로 활약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왠지 환경문제가 전 세계의 평화의 이슈로 등장한 것에 대하여 지구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 정말 환경재앙으로 지구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인가? 지구의 수명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수용 능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에 공감한다.

인류가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가까운 미래에 해결할 수 없는 큰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대기권에 존재하는 가스 중 겨우 0.034%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이는 골프공 지름에 비교해 볼 때 겨우 골프공 표면 락카칠 두께에 해당 함)의 미소한 변화가 이렇게 전 지구를 위험에 처하게 할 줄 누가 미리 알았으랴. 또, 오존층 파괴의 주원인물질로 작용하는 염화불화탄소(CFCs)의 경우 인류는 그 물질 합성에 성공한 이후 그 발견이 인류의 최대의 작품이라고 자랑하며 너무 기뻐했다.

합성한 그 물질은 안정하며, 인체에 독성이 없고 냉매제 등 여러 방면 에서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환경문제는 전혀 예기치 못하게 30년 후가 지나서야 오존층 파괴의 주 원인물질로 밝혀졌다. 이는 인류가 추구해온 과학활동이 인간 중심적, 근시안적 생각, 편리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초래된 결과인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자연으로 받은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편리성, 인간 중심적인 경제활동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의 탐욕과 개발계획에 밀려, 지구생태계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물 종의 탄식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매일 3종의 생물종이 사라진다고 한다. 매 8시간마다 1종이 사라진다는 계산이다. 또, 각 생물 종의 숫자도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주변에서 흔히 보아 왔던 참새도 이제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약 1250만종으로 추정 (Global Environment Outlook 2000, UNEP)하는 수많은 생물 종에 비해, 하루 3종이 사라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 안에서 각 생물종은 각자 생태적 위치를 차지하며 각자 담당하는 역할이 있다. 마치 정상적인 비행을 하기 위해, 정교한 부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서로 연결되고 각자의 기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 순간 사라지는 한 생물종이 비행기 안의 부품이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순간에도 사라져가는 생물 종에 대하여 크게 걱정해야 할 때이다.

생물종의 감소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계획에 직결되어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사람들은 그래도, 산을 절단하고 논?밭을 뒤엎어 아스팔트로 포장 하고 생태적 기능을 잘 감당하고 있는 농촌을 거대도시로 만들어나가기를 갈망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원주시도 인구 30만을 앞에 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으며, 며칠 전 드디어 인구 목표치를 넘었다고 축하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분명 도시화 정책은 건전한 환경조성에 역행 한다. 환경오염을 한 곳에 집중하여 대규모로 양성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농군학교 창시자인 고 김용기 장로는 그의 저서 (이렇게 살 때가 아닌가, 창조사 발행, 1970)에서 일찍이 농촌이 나라의 방석이라고 주장하며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농업은 분명희생을 요구하며 수지가 안 맞을수록 편리한 농사보다는 더욱 땀 흘려 농사를 지어야 하며 농산물은 생명이 있기에, 생물에 애착을 가진 주인의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였다. 농업은 그만두고 공업만을 개발해야 나라가 잘산다고 믿는 정책책임자들을 향해 그는 1978년 작사한 곡 ‘복민회가’에서 ‘물질 문명 과학만능 치솟는 자랑 검은 연기 푸른 불길 말세의 증상..’이라고 공업위주의 정책을 질타하셨다.

또, 그는 도시화 바람이 불기 시작 할 때 건물은 10층 건물 하나 보다는 5층 건물 2개로 나누고, 고층보다는 저층으로 나누어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초고층 건물로 가득 차가고 있는 지금의 거대도시에 대한 선지자적인 예견이었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시화 정책,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가 아니라 농업이 낙원이 되고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생태도시 아니 생태마을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 개인도 편리함만을 좇아 도시에 몰려 살기 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편안히 흩어져 사는 것이 지구의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다.

갖가지 환경재앙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기야 말로 지구 생태계를 잘 다스리는 선한 통치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선한 통치자는 우리 모두여야 한다. 또, 환경문제를 정치적문제로 이슈화하여 자칫 온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가 한 정치가에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환경문제는 정치를 초월하여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인이 함께 고민하며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정치성을 배제한 진정한 환경운동은 없을까? 생태계의 공동체에서 인간만의 편리함을 독점하기보다는 다른 생물종을 살리기 위하여 인류의 희생까지도 각오하는 그런 정치는 없을까? 사람만을 살리는 편리함의 경제보다는 사람과 수많은 생물 종이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경제방식은 없는가? 아무래도 환경문제 해결은 우리의 삶의 패턴을 편리함에서 불편함으로 바꾸어나가는데 진실함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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