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신비한 식물의 세계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일으킨 튤립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7-04-19 11: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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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교도 터어번식의 모자처럼
백합과(Liliaceae)에 속하며 학명(學名)은 Tulipa gesneriana L.이며 속명(屬名)인 Tulipa는 페르시아어의 옛말로서 tulipan 또는 toriban 즉 dolband(터어키어) turban(영어) 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모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꽃의 형태가 회교도가 머리에 감는 터어번식의 모자와 비슷한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속명인 gesneriana는 식물학자 게스넬(C.Gesner)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속 식물은 동부 및 중앙아시와와 일본, 북아메리카, 유럽에 약 150종이 나며 우리나라에도 1종(산자고 : Tulipa edulis Bak) 이 난다.

소아시아 지방 원산의 다년생 구근식물(球根植物)로서 구근인 인경(麟莖)은 난형(卵形)으로 마늘처럼 생겼으며 원줄기는 원주형(圓柱形)으로 곧추서고 갈라지지 않는다. 잎은 밑에서 서로 연속하여 2~3매가 호생(互生)하며 밑부분으로 원줄기를 감싸고 길이 20~30cm 로서 넓은 피침형(披針形) 또는 타원상 피침형이다. 가장자리는 파상(波狀)이고 안쪽으로 다소 말리며 청록색(靑綠色) 바탕에 흰빛이 돌지만 뒷면은 색이 짙다.

원종의 경우 원예종보다 잎의 끝이 뾰족하여 칼모양을 이룬다. 꽃은 4~5월에 뿌리줄기 가운데서 1개의 꽃대가 나와 끝에 1개의 꽃이 위를 향해 피고 길이 7cm 정도로서 넓은 종 같으며 꽃잎의 윗부분 전체모양이 파상의 왕관모양을 이룬다.

주요 종류를 살펴보면 조생종에는 홑꽃종과 겹꽃종이 있으며, 중생종으로는 멘델 튤립과 다윈 튤립이 있다. 만생종이 가장 큰 무리로 생장습성과 꽃색이 매우 다양한데 다윈 튤립, 잡종형 튤립, 코티지 튤립, 백합형 튤립, 겹꽃 만생종, 패롯 튤립 등이 있다. 보통 색이 하나인 튤립을 ‘단일색종’(self-colored), 줄무늬가 있는 튤립은 ‘줄무늬종’(broken)이라 부른다. 꽃의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길이 2cm 정도로서 녹색이며 원추형이다.

네덜란드의 주요 생산품
번식은 주로 구근(球根)과 종자로 행하나 원예종의 경우 종자가 거의 결실이 되지 않으므로 주로 구근으로 번식한다. 종자로 번식할 경우 3년 이상이 지나야 꽃이 핀다. 튤립은 가을에 식재하여 봄에 꽃을 피우는 추식구근(秋植球根)이다.

식재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보통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에 식재한다. 심는 깊이는 10cm 전후로 행하며 촉성재배시 화단에 식재시 보다 얕게 식재한다. 시설내에서 촉성재배를 행할 경우 미리 저온처리를 하여 식재해야 꽃이 고르게 피고 품질이 좋다.

꽃이 진 후 점점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잎이 완전히 갈색으로 변하면 구근을 굴취하여 그늘에 보관하였다가 가을에 식재한다. 튤립은 바이러스에 의해 구근의 크기가 점점 퇴화되어 꽃의 품질이 저하된다. 해양성기후에서 가장 구근의 퇴화가 적고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네델란드 지방이 가장 재배하기에 좋은 기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단에 재배되는 튤립은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보통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재배가 적당하나 햇볕이 잘 드는 화단에서는 구근이 작아져 품질이 떨어진다. 해마다 오랫동안 구근을 캐지 않고 그대로 관상하기 위해서는 음지나 반음지인 나무 아래에 식재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 1912·1926년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튤립 구근 생산을 위한 재배연구는 원예시험장에서 1960·1964년에 걸쳐 강원도 삼척과 김해, 서산, 장항에서 실험하였고 그 후 1964년 중앙종묘에서 최주견 박사가 장항에서 생산을 시도해 보았지만 기업적인 경제적 가치가 없다하여 1978년에 중단하였고 흥농종묘에서도 생산을 시도해 보았지만 중단하고 말았다. 현재 네델란드가 세계 1위 생산국이고 일본이 2위, 다음이 독일 순이다. 주로 정원이나 화단에 식재하는 화단용과 꽃꽂이로 이용되는 절화용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다.

경제를 집어 삼키다
1634년부터 1637년 까지는 튜울립의 전성시대로 이 튤립이 유럽의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까지 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자,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황금시기를 맞이하던 네덜란드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귀족 못지않은 지위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였는데 이국적인 동양의 아름다움을 지닌 튤립은, 16세기 중엽 유럽으로 건너와 매력적인 수집품이 되었고, 상류층을 사로잡으며 비싼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한 상인의 옷감 꾸러미에 실려 들어온 꽃의 구근 하나가 전 네덜란드를 사로잡고 단숨에 광기 어린 투기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 튤립은 상류층의 부유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장의 노동자부터 농부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그 모든 사람들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양파같이 생긴 튤립의 뿌리를 사고파는 데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들수록 튤립의 가격은 열 배, 스무 배로 값이 치솟았고, 튤립은 더 이상 척박한 땅속에서 화사하게 피는 꽃이 아니라 곤궁한 삶을 하루아침에 화려하게 만들어 줄 일확천금의 매개체가 되었다. 이러자 튤립 뿌리에 대한 수요가 미친듯이 폭발하였고, 1636년에는 뿌리 하나가 말 두필이 끄는 마차와 교환이 될 정도였다.

튤립가격은 심한 경우 1주일 만에 600배까지 올랐고, 이러한 경이적인 가격 상승에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튤립투기에 뛰어 들기 시작하였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황제튤립의 경우는 한 뿌리에 6000길더(guilder)까지 거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노동자들의 1년 수입이 200~400길더 수준이었다고 하니 튤립가격에 낀 거품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 할 수 있다.

갈수록 튤립의 가격은 상승하여 한 뿌리의 가격이 2,600%까지 급등했다. 거품에 대한 논란이 오갔지만, 사람들은 이를 외면했다. 어떤 사람은 재빨리 사고팔고를 반복하여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튤립에 대한 열광이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러던 1637년 2월, 튤립 가격은 미친 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튤립 값은 오르기만 했고, 그래서 누구든지 사서 팔기만 하면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뒷사람의 돈이 앞 사람에게 매매차액을 이익으로 안겨 준 전형적인 '폰지게임(Ponzi game)'이었고, 새로운 자본력의 창출이 없이 수익만이 돌고 도는 구조였다. 이러한 원리는 더 이상 뒷사람이 튤립을 사지 않으면, 값이 폭락하게 되어 있었다.

뒤늦게 사람들은 너도나도 튤립을 팔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시장에 매물은 넘쳐나고 그럴수록 값은 더더욱 떨어져만 갔으며 파산자가 속출하였고 빚으로 튤립을 샀던 사람들은 자살을 하였으며, 대다수 서민들이 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앉고 말았다. 그들은 그제서야 튤립이 그냥 “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여파가 네덜란드의 경제를 급격하게 위축, 불황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단순히 관상용으로 시작된 튤립재배는 어느 순간 네덜란드 경제를 집어 삼켜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1900년대 초 많은 미국 사람들을 스스로 자결하게 만들었던 플로리다 부동산 투기열풍이나 과거 코스탁 주식시장, 부동산 투기 바람에 불었던 바람이 이 튤립 열풍과 같은 전형적인 예이다.
이태용- 생태.식물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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