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은 예년에 비해 길고 맑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웠고 봄도 모처럼 봄다웠다. 언젠가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라며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시절, 그 언저리부터 봄은 겨울과 초여름이 헝클어진 모습으로 스쳐지나갔는데, 올 계절은 자연스럽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장대 같던 장마가 잠시 멈출 때 선보이는 파란 하늘은 도시에서 반나절이 채 가지 못하곤 하는데, 꼭 잡은 우산을 뒤집을 듯 거리를 휩쓸었던 바람이 잠잠해진 사이처럼, 하늘은 청명하기 이를 데 없다. 긴팔 와이셔츠도 허전하다 싶은 아침, 파란 하늘을 더욱 파랗게 만드는 높은 구름은 이제부터 가을이라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갑자기 높고 넓어진 하늘, 그래서 가을하늘은 구만리라고 했던가. 짧게만 느껴지는 가을이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축음기 바늘을 타고 울렸을 원로가수 고복수의 가는 목소리는 지나친 세월이 나를 울린다고 안타까워하는데, 일제 강점기 말엽에 세상에 나온 옛 가요는 어째서 ‘으악새’가 슬피 운다고 안타까워했을까. 제목이 ‘짝사랑’인 것을 보아, 말도 제대로 못 붙인 자신을 책망하며 여인이 떠난 뒤의 쓸쓸함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는데, 소심한 그 남자는 마음에 둔 처자를 가을에 떠나보낸 모양이다.
으악새, 웍새, 왁새는 무엇일까?
으악새, 하늘 구만리를 울어 예는 기러기는 아닐 테고, 여름철새인가. 가을녘 이 땅을 찾아오는 기러기는 슬프게 울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가족과 헤어져 떠나야하는 여름철새 중에서 찾아야 할까 보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억새의 사투리라고 한다.
하긴, 억새는 가을에 피어난다. 억새! 하면 가을이 생각나고 가을! 하면 억새가 떠오른다. 가을바람에 억새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김능인은 으악새가 운다고 시적으로 표현했나보다. 그럼 ‘웍새’는? 풀인가 새일까. 국어사전은 이번에도 억새의 사투리라고 한다.
웍새는 어떤 새의 방언이거나 으악새처럼 새가 아닐지 모르는데, 1990년 이후 발간된 국어사전은 웬일인지 으악새를 갑자기 모른 채한다. 고복수가 1972년 사망한 이후 웍새가 으악새를 몰아낸 것일까. 최근 우리말 연구자들은 웍새와 다른 ‘왁새’의 존재를 새롭게 찾아냈다.
왁새는 억새가 아니라 남한강변 둥지에서 으악 으악 우는 우리의 여름철새 왜가리다. 학자들은 왁새를 왜가리의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타향살이’도 작사한 김능인은 어쩌면 평안도 사람일지 모르고, ‘짝사랑’으로 알려진 으악새는 억새가 아니라 왜가리일지 모른다.
계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가을 왜가리
가을이 깊어지면 삼림 깊숙한 곳에 자태를 감추곤 하는 밀화부리와 같이, 제비를 비롯한 숱한 여름철새는 얼음이 어는 겨울을 피해 새끼 키우던 정든 땅을 떠나는데, 많은 왜가리는 요즘, 백로 무리와 함께 남도에 남는다. 겨울에도 습지가 얼지 않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이 땅이 온난화되었다는 걸 가시적으로 웅변한다.
억새는 스스로 변모한다
서울시 소비문화의 역사를 축적하는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은 2002년 월드컵을 맞아 개가천선했다. 1995년 붕괴된 삼풍백화점 잔해를 마지막으로 매립하곤, 한 봉우리는 ‘노을공원’이라 이름붙인 골프장으로, 다른 봉우리는 ‘하늘공원’으로 이름 하는 으악새? 아니 억새광장으로 눈부시게 변모한 것이다.
서울시는 해마다 가을철이면 축제를 연다. 아름다운 석양과 보름달 아래 억새밭 밤길을 걸으면서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여유를 즐기라고 권한다. 숲이 발달하기 전에 나타나는 억새밭은 가을의 기막힌 경관을 보여주지만 이내 숲으로 변한다. 번개가 높은 나무를 내리치거나 성장속도 차이로 인한 마찰열로 줄기를 나란히 한 나무에 불이 붙으면 발달한 숲은 다시 억새밭으로 바뀐다. 말 그대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은 정상부 가득 관광객이 넘치지만 사람들이 관리하지 않는다면 억새밭은 서서히 숲으로 변모해갈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억새가 안내해준 가을을 만끽하자
가을억새는 이뇨, 진해, 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억새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인간을 위한 약효가 있건 없건, 자신의 계절을 찬미한다. 억새로 지붕을 이었던 사람도 계절의 흐름에 오랜 세월 순응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억새와 같은 과인 벼가 익어가는 가을을 맞아, 계절에 순응하기를 희망해본다.
억새는 강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은 왁새 즉 왜가리와 달리 잊었던 가을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자연이라는 짝을 잃고 슬피 울지 않을 내일을 위해, 웍새, 즉 억새가 안내해준 이 가을을 만끽하자. 계절의 자연스런 흐름을 억새와 함께 찬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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