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의 반란 강물은 '약물중독자'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6-04-10 19:05:23
  • 글자크기
  • -
  • +
  • 인쇄
@P1@01@PE@

폐기처리 법규 없는 의약품 … 제 3의 오염원 될 판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37)씨. 서랍장을 정리하며 비상약품 보관함에서 쏟아진 각종 의약품의 분량에 스스로 놀랐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쓰지 않는 약품들을 모아둔 것인데 방바닥에 쏟아보니 웬만한 동네약국 부럽지 않다.
종류도 다양하다. 아토피가 있는 둘째 딸아이가 사용하던 피부용 연고, 몸살감기에 사용했던 진통제, 가정상비약으로 비치해 뒀던 소화제, 냉장고에 수개월째 방치된 막둥이 감기약 시럽까지…. 게다가 몇몇 의약품들은 언제, 무엇 때문에 처방받은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씨는 이 약품들이 “먹어도 낫지 않거나 너무 많이 조제하는 바람에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약품은 유효기간이 임박해 있거나 이미 지나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물약의 경우는 하수구에 쏟아버리고 가루약이나 알약들은 쓰레기봉투에 싸서 버렸다”고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이 의약품을 폐기할 때 이씨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알약은 종량제 봉투로 … 물약은 하수구로 직행
각종 항생제와 화학성분이 포함된 약제가 그대로 쓰레기매립장이나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에 의한 환경위해를 염려하는 목소리나 연구는 아직 없다.
그 사이 건강을 위해 사용된 의약품은 강력한 내성을 가진 신종 병원성 세균, 바이러스를 키우며 전국의 하천에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버릴 때마다 난감해지는 의약품은 어떻게 폐기해야 옳은 걸까? 소관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답을 구해봤다.
식약청 의약품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약품이라도 폐기문제는 폐기물관리법에 해당되는 사안일 뿐 약사법 차원에서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즉 식약청은 약제의 안정성이나 수급 등의 문제만을 관장할 뿐, 쓰고 난 다음의 폐기방법에 대해 관여할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지는 ‘불용의약품(못쓰는 의약품)’을 폐기물로 간주하고 환경부에 적절한 ‘폐기방법’을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되돌아 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생활폐기물과의 한 관계자는 “약품이란 게 어차피 먹거나 몸에 쓰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되물으며 “유해한 것이 아니니 쓰레기봉투에 그대로 버리면 된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처럼 의약품 폐기는 그리 어렵지도 고민할 사안도 아닌 것일까? 평생 의약품에 파묻혀 일생을 보내는 약사들은 실제 어떤 방법을 통해 의약품을 폐기시키는지 궁금했다.
지난달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희 의원실이 서울지역 약사 4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니 약사들 역시 이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4% 이르는 약사들이 “불용재고약의 처리 방법을 몰라 약사회, 제약회사의 결정을 기다린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6%에 이르는 약사들은 불용재고약을 아예 “그냥 버린다”고 응답했다. 전국적으로 따져보자면 상당량의 의약품이 일반쓰레기처럼 버려지거나 하수구로 흘러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렇게 의약품을 처리한다고 해서 현행법에 저촉될 것도 없다. 약사법에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 약품에 한해 폐기시 보건소 등을 통해 수거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약사 64%‘처리방법 모른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04년 한해의 불용재고약 규모만 180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용의약품이 ‘200~500만원에 이른다’고 응답한 약국이 38%에 달했으며 500~1000만원이상 ‘버릴 약’을 쌓아놓고 있는 약국도 전체의 20%를 육박했다. 가정이나 약국이나 의약품 폐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란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폐기의약품의 위해성에 대해 89%에 해당하는 약사들이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한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약의 독성과 성분을 꿰뚫고 있는 약사들이 한목소리로 환경위해성을 걱정했다면 ‘몸에 쓰는 것인데 유해할 것이 있겠냐’는 환경부 당국자의 냉소는 너무 안이한 생각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의약품에 의한 환경위해는 일단 차치해두고, 어째서 약에 관해선 일가를 이룬 약사들이 수명을 다한 약품의 폐기방법 하나 제대로 모르고 있을까. 의약품 유통시장의 질서를 들여다보면 해답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대개 제약회사는 도매유통망을 통해 광범위한 영업조직을 운용하며 판매 전략에 나서게 마련이다. 때문에 의약품 유통시장의 과당경쟁은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미 판매된 재고의약품을 반품할 경우 제약사 입장에선 매출손실과 직결되는 문제다. 어떤 이유로든지 돌려받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게 제약사의 논리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 ’02~’03년에 걸쳐 서울시약사회가 일괄 수거해 제약사로 반송한 의약품은 50억에 달한다. 하지만 약국으로 되돌아온 것은 현금이 아니라 ‘약값에 준하는 또 다른 약품’이었다. 오죽하면 서울시약사회 관계자가 “차기 수거 때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까.
결국 가급적 재고를 받지 않으려는 제약사, 적절한 폐기법을 찾지 못했거나 무작정 방치하고 보는 약국, 양측의 이해관계가 해마다 불용재고약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관부처들조차 이들의 환경위해성에 무관심해 의약품의 무단폐기를 스스로 방조하고 있다.

하수처리장도 못 걸러낸 의약성분…‘약물’로 변해가는 강물
그동안 의약품은 하수처리 공정을 거쳐도 걸러지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일부에서 제기돼 왔다. 본지는 광주과학기술원 김상돈 교수팀이 지난해 12월 국제환경독성학지(Environmental Toxiological & Chemistry) 25권에 게재한 논문을 입수했다. 실제 의약품이 얼마나 환경으로 스며들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생활하수에서의 실제 의약품 함유량을 최초로 연구한 김 교수팀은 서울, 부산 등 4개 광역시의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처리공정을 거쳐 하천으로 배출되는 물)를 채수해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정수장은 전통적인 처리공법으로 의약품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방류수에서 해열제, 진통제, 소염제, 콜레스테롤저하제 등 다량의 의약품 성분이 검출됐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강으로 흘러가는 방류수의 경우 해열제(아스피린)의 주성분인 살리실릭산이 2.43ppb(0.001ppm), 소염진통제인 디쿨로페낙이 1.97ppb 검출됐다. 현재 미국 FDA에서는 유입수(관로를 통과해 하수처리장으로 막 유입되는 물)를 기준으로 약품성분이 1ppb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약품의 함유량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없다.
다단계의 처리공정을 거친 방류수가 이 정도라면 유입수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이 높은 수치가 검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의 모 하수처리장 유입수에서는 진통제 디쿨로페낙 성분이 해외에서 확인된 최대 검출량 1.2ppb를 8배이상 초과하는 9.87ppb나 나왔다.
또 부산과 광주 등의 주요 하천부근에서 살리실릭산이 각각 6.7ppb, 2.2ppb로 검출되면서 인구 밀집지역 하천일수록 약품성분으로 인한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방류수에서는 해외 기준을 다량 초과한 콜레스테롤 저하제, 간질치료제 등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의약품에 의한 생태계교란이 지나친 기우(杞憂)가 아니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김상돈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직 정확한 매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필요 이상의 과다한 약품을 복용하고 체내에 흡수되지 않은 약품이 배출된 것과 하수구로 버려진 폐기 의약품에 의한 성분일 것으로 추정 된다”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또 대책방안을 묻는 질문에 “폐의약품 수거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되고 정책적으로도 환경부가 나서서 수계에 관한 장기적 모니터링이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도, 환자도 항생제 중독… 환경으로 흘러가 중병(重病) 키울라
의약품에 의한 환경위해가 점차 윤곽과 외연을 드러낼 즈음, 한 시민단체와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전국 병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던 참여연대, 의사의 진료재량을 위축시킬 것이란 의료계의 첨예한 대립각이 법원의 판결로 일단락된 것이다.
이 자료는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란 이름으로 공개됐는데, 쉽게 얘기하면 감기에 걸려 병원을 내원할 때마다 조제되는 항생제 횟수라고 보면 된다.
원칙적으로 항생제는 세균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약제다. 아직 항생제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 조사결과는 연구된 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물질이 수자원 환경에서 내성 세균을 증가시킬 것이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규모가 작은 병·의원의 경우 최대 90%가 넘는 항생제 처방률을 보여 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대규모 종합병원 역시 최대 80%의 높은 처방률을 보였다. 대부분의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한 발병인 점을 감안하면 치료효과도 못 본채 항생제로 내성만 키워 온 것이다.
감기(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외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미국이 43%, 말레이시아가 26%, 네덜란드가 16%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1.5~5배가량 높은 처방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항생제 남용문제는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반을 가동할 만큼 중요한 사안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항생제 내성관리가 걸음마 수준에 불가한 국내 의약계의 발걸음은 느리다 못해 답답할 수준이다. 본지는 지난해 1월(193호) 충주 교현초등학교의 집단이질 발병을 특집 보도하면서 ‘오염된 지하수’를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1년 가까이 사건의 진원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이질균이 원인임을 밝혀냈다. 의약품이 인간에 끼치는 영향에 이처럼 무지한데 하물며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한다면 ‘바램이 너무 크다’는 핀잔이 되돌아올지 모른다.

@P1@02@PE@

폐기된 의약품의 숙명‘며느리도 몰라’
이런 맥락에서 의약품의 수계유입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부터 폐기의약품에 대한 적정관리법을 ‘정부차원에서 강구하고 홍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려오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불용재고약을 제약사가 일괄 수거해 처리하는 ‘take-back’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판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 후 폐기되는 약품까지 제약사가 책임지고 거둬들이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북미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의약품에 의한 생태학적 영향과 이를 저감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 정부가 주지해야 할 점이다.
폐기의약품에 대한 허술한 관리책임은 일차적으로 생산자와 감독기관에 있다. 그러나 문명생활 전반에서 발생되 위해를 주의 깊게 감시하지 못한 환경부도 면책은 어렵다.
폐기의약품 문제는 자신들만의 화두가 아니라는 의약계의 의견도 귀 기울여 봐야한다. 대한약사회 약국팀 민대식 차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약품의 환경오염은 사람에 의한 것만으로 좁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 차장은 “수산부문에서 양어장에 다량의 의약품이 쓰이고 축산부문 역시 과다한 동물의약품이 쓰이고 있지만 농수산업 보호논리에 밀려 제대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 며 “환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약품 문제는 과학적 분석이 뒤따른 다음 해결책을 강구해야 순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대형제약회사는 수거된 폐기의약품을 지정업체에 위탁해 소각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태워지는 의약품이 얼마나 되는지, 폐기과정에 적정한 방법과 절차를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된 바도 없다. 제약사가 암묵적 함구령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내에서 쓰레기봉지로 버려져 매립되고 있는 다량의 의약품도 문제다. 이들의 위해성을 단순한 침출수(매립 이후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액체나 수)관리로 안심하기엔 의약품이 지닌 독특한 생리화학적 특성이 간과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꼬집고 있다.
호러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괴기생명체. 언젠가 우리는 약품의 독성을 먹고 자란 막강한 괴물을 뉴스로 목격하며, 의약품의 환경위해성을 과소평가했던 오늘날의 현실을 깊이 후회할지도 모른다.

취재 / 이상복 기자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뉴스댓글 >

헤드라인

섹션별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오늘의 핫 이슈

ECO 뉴스

more

환경신문고

more

HOT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