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소장의 ‘환경이야기’

줄기세포 신화와 민족주의 광기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6-01-24 13:44:57
  • 글자크기
  • -
  • +
  • 인쇄
“이번 파동은 우리 사회의 생명윤리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민족주의 광기에 대한 자성론이 이는 현상은 맹도견을 대견스레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는 것처럼 좋은 징후다”

무심코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는데 개 한 마리가 자동문 옆에 얌전히 앉아있다. 훈련받는 맹도견이다. 밀려들어오는 승객에 발이라도 밟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맹도견을 보고 놀라지 않는 승객들. 시각장애인과 언론의 홍보 덕분인지, 우리 사회가 많이 성숙했구나 싶어 반가웠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지하철. 장애인들이 지하 서울역 선로를 점거했기 때문이라고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는 보도했다. 장애인들은 왜 불편한 몸으로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을까. 심심해서 그랬을 리 없다. 장애인들을 정작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장애인과 그들의 이동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숫한 문제제기에도 꿈쩍도 않는 지하철 당국에게 장애인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뉴스는 엉뚱하게도 장애인들의 시위를 탓했다. 보행자에 대한 안전장치, 충돌과 추돌을 예방하는 도로설계에 소홀한 상황에서 누구나 사고에서 예외일 수 없다.
부실한 안전장치와 가혹한 노동조건은 작업장 사고를 빈발하게 한다. 정부와 기업은 사고 예방 노력에 우선해야 하고, 장애인들도 정상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은 물론 사회적 인식도 거듭나야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치료와 재활에 진력을 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생명의 희생은 피해야 할 것이다.

지적과 비판에 자유로운 연구는 없다
MBC PD수첩 방영 이후 방송국 앞에서 촛불시위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네티즌과 척수장애인협회 회원들이 “MBC 사장의 사과와 PD수첩 관계자 문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회장은 “과장된 내용으로 난자 기증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유발시키는 MBC에 항의서를 전달하려고 시위 장소에 나왔다”고 했으며 가수 강원래씨와 그의 부인도 참석했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비윤리성이 드러난 것과 불치병과 난치병 치료 연구는 별개인데, 뭔가 잘못되었다. 지적과 비판에서 자유로운 연구는 없는데 황우석 교수는 왜 성역이어야 하나.
현실공간보다 가상공간은 험악하다. 지저분한 욕설은 물론이고, PD수첩 관계자 가족을 인터넷에 올리고, 살해하겠다는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불매운동으로 광고주를 압박하기도 한다. 익명의 가상공간은 거의 민족주의 광기에 매몰되고 있다.
논리는커녕 눈여겨 볼만한 주장도 찾기 어렵다.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끔찍한 언어폭력이 꼬리를 문다. 난무하는 욕설 속에서 희열과 재미를 찾는 것일까. 배아줄기세포가 불러낸 붉은악마들은 인터넷 공간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번 욕지거리는 근본적으로 언론이 부추겼다.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파괴하는 배아는 생명인가 아닌가를 놓고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최초의 영예는 사실 비판돼야 했다. 다른 나라는 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우리처럼 과감하지 못했는지 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찬사만 연발했다. 외신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면서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했던가. 생명윤리 문제를 지적하는 외국의 목소리는 거셌고 우리나라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건만 전혀 다루지 않았다. 수많은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이 당장 치료되는 양 호들갑을 떤 우리 언론은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국가부가가치 상승을 기정사실로 전했다.
황우석 교수가 만든 배아줄기세포는 과연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해줄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고 나중에 황우석 교수도 자세를 바꾸었지만 아직 그 가능성은 모른다. 그 줄기세포를 당장 몸에 넣는다면 십중팔구 암세포로 바뀌어 환자를 더욱 큰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 연구를 위해 난자가 계속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작년과 올해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으므로 그 확립된 줄기세포를 활용하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난자기증을 위한 민간단체는 어처구니없다. 여성의 처지에서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형제라던 새튼 교수는 두려웠을 것이다. 비윤리적으로 연구한 팀에 계속 남는다면 미국 학계는 그를 외면할 테니 결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황우석 파문’ 생명윤리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새튼 교수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 윤리학자들이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침묵해 온 황우석 교수는 결국 곤혹을 치렀다. 반성과 함께 연구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뒤늦은 해명과 반성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몇 가지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독립적 조사만이 국내외 신뢰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세계가 놀라는 것은 황우석 교수의 난자확보 능력”이라는 네이처 기자의 냉소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문제는 국제망신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윤리를 의심하는 외국 과학 잡지들은 앞으로 우리 학자들이 쓴 논문을 순순히 게재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윤리논쟁을 지켜볼 것이다. 비윤리적 연구를 예방할 수 있는 어떤 조치를 마련하는지 주목할 것이다. 납득할만한 조치가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무너진 우리의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촛불시위에 나선 척수장애인들은 지금은 기증된 난자로 치료를 연구할 시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는데, 답답하다.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라 안정성 높은 성체줄기세포가 더욱 요긴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 많은 국가에서 임상에 적용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정부와 생명공학자들에게 촉구해야 할 텐데, 안타깝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서 민족주의 광기에 희생되는 모습에 안쓰럽다. 장애인도 정상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화가 난다.
이번 파동은 우리 사회의 생명윤리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민족주의 광기에 대한 자성론이 이는 현상은 맹도견을 대견스레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는 것처럼 좋은 징후다.
언론은 자성해야 한다. 스타 과학자의 근거 부족한 달변만 받아 적는 행태에서 벗어나, 기자답게 다양한 의견을 취재해 자신의 시각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 비윤리적 연구는 물론 민족주의 광기도 더는 기승을 부리지 않도록, 건강한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박 병 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기사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뉴스댓글 >

헤드라인

섹션별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오늘의 핫 이슈

ECO 뉴스

more

환경신문고

more

HOT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