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30일. 서울시 상수도연구소 소장으로서 만 4년의 임기로 공직을 마감한 박수환부이사관.
평소 그의 집무실에는 관련 전문서적 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 문학, 사상서 등이 항시 정렬되어 있다. 아직은 공직의 때가 남아 있긴 하겠지만 공업직 사무관에서 이사관까지 서울시 공직 생활 속에 그의 색깔은 확실히 일선 공무원과는 다른 면면을 발견하게 된다.
퇴임까지 근무했던 서울시 상수도연구소는 KOLAS인정 획득을 비롯하여 국내1호 원생동물검사기관으로 지정 등 국제적인 수질검사기관으로 급성장 시켰으며, 박사급 연구원들을 배출시키는 등 직원들의 인재양성에도 한몫을 해왔다. 상수도공무원 3천명 중 박사급 공무원이 주로 연구소에 집약되고 있는 점은 박수환씨가 4년간의 거취 속에 파생시킨 튼실한 업적이다.
라운딩을 나가서도 매 라운딩마다 예습과 실습 그리고 복습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인가. 이 같은 고민은 서울시 수돗물을 과학화하는데 큰 축이 되어주었다. 박수환 부이사관에게 영원히 붙어가는 이미지는 무엇보다 바이러스 사건이다.
고건 서울시장의 임기시절이다. 다 알다시피 고건 前 시장의 성품은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지 않는 보수 관리 정착형이다. 이런 시장 앞에 그는 생산관리부장이란 4급서기관으로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수돗물 바이러스는 도저히 학자로서 양심과 정당성이 결여되어 이는 서울시로서 당당히 법정 투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즘에야 일선 행정기관도 언론중재 등 민형사성 소송이 잦지만 그 당시로는 감히 공무원이 그것도 학계에 도전장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유는 정당한 분석으로 서울시 수돗물의 안전성을 염려했다면 기꺼이 수용하겠으나 당시 공원 내 잘 사용하지 않는 수돗물을 채수 공정시험을 거친 시험법으로 검사하지 않고 학계 개인의 불확실한 실험으로 바이러스 검출이 된 사건. 물론 환경부도 내심 놀라워하면서도 그 추이를 관망하는 정도로 전국이 발끈 달아올랐던 사건이다.
결국은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함께 고건 시장을 찾은 김상종 교수는 고 시장의 중재로 서울시가 법정공방을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당시로는 학계와 정면충돌했던 기록적인 사건이다.
구의정수소장시절에는 3세대의 역사를 지닌 고질적 문제를 정수장내 시설물들을 관찰하면서 개선하던 기술자적 옹고집은 안주하거나 일을 하지 않으려는 공직사회에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진취적 사고와 바이러스와의 투쟁 끝에 그는 상수도 연구소에 공업직으로는 두 번째(1대-김홍석)로 3급 승진 소장으로 부임해서는 위축된 연구직들의 조직변화를 꾀한다.
항시 남의 말을 경청하고 업계의 의견을 충실히 들어가며 실질적으로 정책방향에 전환하려는 의지는 기술직 공무원들이 닮아가야 할 자세이다. 그 일환으로 전국의 연구직들의 연구 활동이 개별적으로 분산되고 상호 교류가 없다는 점에 전국 광역시 연구소장들의 모임인 연구소장 정례회의를 개최해 4년간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기술 분야의 혁신과 개혁을 끊임없이 갈구했던 박 소장은 그간의 활동을 밑바탕으로 마지막 봉사를 본부 차장으로 장식을 하고자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그는 후진을 위해 과감히 명예로운 퇴임으로 30년 공직을 마감한다. 제 2의 인생은 성서에 나오는 문장을 현대적 사고로 연구하는 제2의 삶을 펼쳐보고자 한 그는 저 해는 노을을 남기고 지지마는/나는 무엇을 남기고 지랴. 라고 읊조린 어느 노시인의 시처럼 박수환 소장의 30년 공직에서는 물의 흐름을 남기고 간 수도인으로 앞으로도 민간기구나 협회 등에서 유용한 가치를 더욱 부추겨줄 진정한 수도인물로 다시금 태어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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