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자연훼손과 생태계 파괴행위, 지정된 장소이외에서의 취사 및 야영등이 금지되고 건축물의 신축과 증축, 토지 형질변경, 광물채굴 등이 엄격히 제한되고 공원구역에서의 주민불편과 사유재산권 침해 등의 구속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 제약을 감안하고도 울릉군에서는 이미 지난 ’00년 경북도와 함께 국립공원지정을 건의 한바 있으며, 환경부도 본격적으로 국립공원지정에 대한 기초조사를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일대에 대해 지난해 국립공원 지정이 실시되었다면 울릉도와 독도는 21세기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환경부소관 이후로는 첫 번째, 전체로는 21번째 지정국립공원, 그리고 해상으로 본다면 다도해와 한려해상공원에 이어 세 번째 해상국립공원으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처럼 해상국립공원 지정이 원만히 진행됐다면, 일본과 미묘한 영토분쟁 줄다리기를 반복해 온 독도는 21세기에 들어와 정부가 국립공원화를 바탕으로 한국의 공식적인 영토임을 다시금 세계에 각인시키는 전략적이며 실익을 고려한 정책일 수 있었다.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신용하 선생은 일찍부터 한·일간 가장 해결하기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 독도문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신용하 선생
“국립공원화 실효적지배 확인하는 좋은 정책”
독도문제는 1952년 1월 28일 일본이 문제를 제기한 후 약 50년간 한·일간에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독도 영유권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 학계에서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를 검토한다. 첫째는 역사적으로 그 땅이 어느 나라 소유인지를 검토하는 역사적 근원이다. 둘째는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그 영토가 국제법상으로 어느 나라 영토로 처리되어 있는가를 검토하는 국제적 지위이며 셋째는 실제로 어느 나라가 어떻게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실효적 점유다.
한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영토로 계속해서 지배해 왔다고 하는 역사적 증거자료들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반면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을 할 때 대한민국 외무부에서 일본 외무성에게 독도를 일본문헌에서 처음으로 논급해서 일본영토로 다룬 고문헌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정부가 1960년에 한국정부에 보낸 외교문서에 따르면 1667년에 편찬된 隱州視聽合記(은주시청합기)라는 보고서가 일본 최초의 고문헌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독도를 松島로, 울릉도를 竹島로 호칭하면서 언급하고 있다.
“隱州(은주: 은기도)는 北海(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隱岐島 라고 말한다. 戌亥間(술해간: 서북방향)에 2日 1夜를 가면 松島 (송도)가 있다. 또 1日 거리에 竹島(죽도)가 있다. 속언에 磯竹島(이소다케시마)라고 하는데 대나무와 물고기와 물개가 많다. 神書(신서)에 말한 소위 50猛일까. 이 두 섬(松島와 竹島)은 무인도인데, 高麗(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雲州(운주: 出雲國)에서 隱岐(은기도)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한즉 일본의 서북[乾] 경계지는 이 州 (隱州: 隱岐島)로 그 限(한: 限界)을 삼는다.”
즉 일본이 최초의 고문헌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온 1667년의 隱州視聽合記(은주시청합기)에 일본 육지의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로 한다고 명료하게 명시되어 있다. 일본은 그 후부터 이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일본은 역사적 근원에서 일본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없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 후 일본 외무성은 역사적 근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수십 억, 수백억을 들여 일본학계를 동원해서 자료를 찾았지만 쓸만한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현대사에 있어서 일본은 1905년 1월 28일 내각총리대신의 지휘아래 의견을 조정시켜서 내각회의에서 영토편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서에는 “이름도 없고 북위 몇 도 동경 몇 도에 있는 이 섬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유했거나 지배했다고 하는 형적이 없는 섬이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로 편입을 하고 이름을 다께시마라고 하고 시마네현은 기도사의 관리 안에 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는 1905년 6월에 시마네현 지사에게 관내 고시를 하고 시행하라고 내려보냈다. 영토편입을 할 때는 두 개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하나는 주변국에 사전 사후 통보를 해서 이의가 있는지 물어야 하고 둘째는 공고를 해서 세계에 알려야 한다. 일단 일본은 이러한 형식을 거쳤다. 그래서 1905년 2월부터 과거 일본에서 송도라고 불리던 독도가 이번에는 다케시마(竹島)라는 새 이름을 얻고는 일본 시마네현에 영토편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상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도 언론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을사조약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에는 삼천리 강토 전부가 일본소유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다루지 못하고 1945년 광복을 맞은 것이다.
지금 일본은 1905년의 영토편입은 국제법상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대한제국이 1910년까지 존재했고 대한제국 외무부는 1906년 1월31일까지 존재했는데 모든 일은 1905년 1월과 2월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외무부가 존재하던 때 왜 대한제국 정부는 단 하나의 항의문서도 보내지 않고 대한제국의 신문과 국민은 한마디의 항의도 없었냐고 따진다. 하다못해 벽보하나, 시위 한번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독도는 평화적으로 1905년 2월에 일본영토에 편입됐다고 하는 것이 국제법상의 해석이다. 이것이 지금 일본정부가 우리에게 승복하지 않는 점이다. 지금 독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접근방법이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을 한가구든지 다섯 가구든지 사람을 살게 하면 끝나는 것이다. 평화적으로 어느 나라 민간인이 살고 있는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어떻게든지 한국 사람이 사는 섬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이번 어업협정에는 봉쇄되어 있다. 이것이 과도한 개발이라는 것으로 간주할 때는 양측이 합의권고에 의해 안하겠다고 정해져 있다.
이번 환경부에서 독도를 국립공원화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를 확인하는 아주 좋은 정책이기는 한데 다른 면에서는 독도개발에 관한 특별법을 지정하여 이것을 못하게 막고 있다. 사람을 살리지 않겠다면 환경부의 정책만이라도 집행이 되면 좋겠는데 일본에서 외무부에 그것을 조회하니까 외무부는 더블플레이를 했다. 이쪽에서는 애매모호하게 답을 하고 일본 쪽에는 대한민국 외무부로부터 독도의 국립공원화 계획은 국책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 아무런 결정을 한 바 없다는 공식통보를 받았다고 일본 외무성이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것이 선거용이구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타락할 조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환경부는 열심히 그것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외무부는 침묵을 지키면서 일본에 대해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하다가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수그러지면 그나마 국립공원계획도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국립공원이라도 만들자는 것이 우리여론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독도의 국립공원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것도 우리의 울릉도 군민과 그곳 민간단체들의 반대로 말이다. ’03년 울릉도에서 가진 몇 차례의 공청회에서 지역 유지인 한 군의원은 “극단적으로 울릉도가 일본에 편입되면 현실보다는 자연보호와 지속적인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망언에 가까운 발언도 서슴치 않아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물론 이 내면에는 그동안 국가 정책의 불투명하고 국민을 아우르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데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나 가슴속에는 아픔이 도사릴 수밖에 없다.
지역 토호세력의 반발로 국립공원화 무산
지난 03년 7월 17일부터 나흘간 환경부(당시 김진석 자연공원과장)를 비롯하여, 양병이 서울대교수, 정회성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김종원 계명대 교수, 안원태 한국경제사회연구원장등 20여명이 울릉도 현지에서 지역관계자등이 참석한가운데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국립공원 지정을 두고 당시 세미나는 두 갈래 의견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군청회의실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지역주민, 공군 및 육군, 군의회, 경찰등 관련기관들이 대거 참석하여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이날 참석자를 되짚어보면 주최측에서는 정회성 환경정책평가연구위원을 비롯하여 환경부 김진석 과장과 최형옥 사무관, 양병이 서울대환경대학원교수, 박종화교수, 안원태한국경제사회개발연구원장등 국립공원과 관련 생태, 환경, 환경영향평가의 최고 정상의 전문인 22명이 참석했다. 또 지역에서는 울릉군의회 군수 및 실무과장, 해군 118전대장, 공군 제 8355부대장, 동해해양경찰서 울릉 파출소장, 울릉경비대장, 수협, 농협, 한전, 경실련, 새마을협의회, 자연보호협의회장, 대구매일 울릉주제기자등이 참석했다.
전체적인 토의와 밤늦게까지 가진 개발 논의등을 총괄 정리할 때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의견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우선 지역 유지를 포함한 주민의 대부분이(군의원등) 국립공원에 대해 매우 큰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즉, 국립공원지정시 뒤따라올 개발제한에 대한 반감으로 대다수 주민이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이들은 국립공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사전에 필요했을 뿐더러 지난해 국립공원 지정을 도자체에서 환경부로 의견을 보내왔으나, 실제로 군자체에서는 군의원마저 이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와 군이 합의된 의견도출이 아니라는 점도 밝혀졌다.
아울러 이미 울릉군 주민중 자본력을 지닌 인사들은 이미 군을 빠져 나갔고, 현재는 평범한 군민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으며, 점차 쇠약해져가는 군의 미래를 볼 때 막연한 불안감에서 실체적이고 정확한 그리고 신뢰성 있는 ‘을릉군발전협의회’가 자발적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국립공원지정시의 한일관계에서의 미묘한 외교적 시차와 생계와 환경보호의 극단적 대립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중요 쟁점이었다. 도출된 의견 중에는 21세기는 지식사회이다. 현재의 1차적 산업에서 머물지 말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군립이나 도립공원은 오히려 자연파괴를 합법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울릉군의 주민감소와 생계의 뚜렷한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울릉도는 자칫 죽어가는 섬으로 비춰질 어두운 전망도 그들의 내면에 흐르고 있었다.
아울러 현실 진단에서는 “현재의 울릉도 관광상품은 한풀이 관광이다, 즉 햄버거를 먹는 저렴한 일회성 관광이다. 앞으로는 고급와인을 먹으며 돈을 많이 쓰면서도 적정인원이 평화롭게 찾는 그런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현실비판에 군관계자들은 “우리는 국립공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 요청관련 공식문서가 있는가?” 라며 당초 국립공원화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의 첨예한 대립의 한 양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군자료에 대한 공식문서는 확인 못했으며 경북도가 두 차례 이상 환경부에 건의한 내용은 확인 되었다) 환경부 당시 김진석 과장은 “환경보전에는 모든 군민이 동감하고 있다. 이번 공청회를 통해 이 지역의 보배로운 자원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훼손하지 않으면서 많은 관광객을 어떻게 유치시킬 것인가. 주민의 생활이윤추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관건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국립공원화는 외교분쟁에 있어 ‘절묘한 전략’
21세기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가 지정되면 일본 시마네현이 독자적으로 다께시마의 영토편입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 소규모 군인 울릉군의 요망사항을 중앙정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 토호세력의 강한 반발과 국립공원화 이후 밀려올 각종 제재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으로 반대하는 지역주민에 의해 독도의 ‘국립공원화작전’은 사실상 백지화되고 말았다. 독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온 신용하 前 서울대 교수의 강의처럼 환경부의 국립공원 추진은 매우 바람직한 전략이었다. 국제외교전에 있어 독도에 대한 외교적 전략 수립시, 국내의 정책 혼선과 마찰은 결국 기선제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주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다시 불거진 독도 영육권 분쟁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거듭 강조할 처지가 아니다.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울릉도를 포함한 독도의 국립공원화를 서두르는 작업도 다시금 병행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아쉬움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역 주민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와 협조, 지속성을 띄는 발전방향의 지표 설정에 있어 많은 전문가들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며, 지역주민들이 개인이기주의에서 탈피하고 통일된 전략 수립에 동참하면서 울릉군의 총체적 전망과 미래를 현명하게 투영할 시점이라 본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