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소장의 ‘환경이야기’

조갑제 대표의 지적이 일면 타당한데 …
박병상 | eco@ecomedia.co.kr | 입력 2005-05-18 14: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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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는 최근 “보도 아닌 대변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자들과 언론이 가담함으로써 ‘백주의 암흑’이 연출됐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해 작지 않은 파란을 일으켰다.
기자들을 향해 “CCTV로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백일 단식이라고 확정 보도하느냐”며 일갈한 그는 승려 지율의 단식을 거짓으로 몰았다.
“이라크 전쟁에서 기자들이 인구비율로 전투원보다 더 많이 죽은 것도 사실을 확인하려다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자출신 조 대표는, 서슬이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기자들은 의심어린 보도태도를 버리지 않았다고 전제, 요사이 젊은 기자들의 ‘反언론 反사실적 행태’를 ‘정보화 시대의 기자실종 사태’로 규정, “한국 기자들은 죽었다!”고 천명했다. 중간에 음식을 먹으면 단식을 계속할 수 없다는 철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 대표는 단식에 관한한 상식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조 대표의 주장은 여러 시민단체에 의해 망언으로 규탄되었지만, 그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속도와 개발의 허상에 맹목적으로 매몰된 군상들이 천박하게 점령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파리 떼처럼 난무하는 온갖 비방과 욕설 속에는 기네스 기록 운운하는 상식 이하의 의혹이 준동했거늘, 왜 사실여부를 취재하지 않았느냐고 호통친 그 선배기자는 공사가 지연되면 2조원 이상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당국의 주장을 사실인양 보도한 기자들을 나무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밝힌 그의 주장 중, 사실 확인을 촉구한 점은 평가할 만했다.
기자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던 단식 장소는 형사들이 늘 살피고 있었다. 지율을 위한 음식물이 반입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그에게 ‘기자정신’을 묻기 민망한 노릇이지만, 대선배를 자칭하는 조 대표는 물론, 그에게 혼난 젊은 기자들은 왜 지율스님의 손가락만 바라보는 것일까.
단식일수를 세지 말고 파괴되는 자연을 살펴달라는 지율의 부탁을 왜 한사코 외면하는가. 특종에 눈이 먼 언론들의 선정성 보도태도 때문일까. 천성산 도롱뇽을 대리하는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지율과 ‘도롱뇽의 친구들’은 도롱뇽 몇 마리의 생명만을 지키려는 의도를 넘어섰다. “모든 생명과 우리들이 둘이 아니라는 데서 천성산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지율은 말한다.
기자정신이 살아있다면 도롱뇽과 단식일수보다 소송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절박했던 도롱뇽과 천성산 터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충돌한다면 돈과 권력으로 여론을 환기할 능력이 우수한 개발세력과 고속전철 당국의 큰 목소리에 일방적으로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이 어려운 상황에도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작은 목소리에도 같은 무게의 관심을 보여야 옳았다.
사업자 측도 부실을 인정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근거로 터널공사가 시공되는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심도있게 취재해야 삼권을 감시하는 ‘무관의 제왕’다운 태도였다. 활성단층이 3군데 지나가는 파쇄대를 끊는 터널이라면 꼬리치레도롱뇽이 번식하는 계곡을 마르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상식을 전문가들이 누차 지적했다면 당연히 관심을 갖고 취재했어야 옳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단 거리로 가장 빠르게, 건설비용은 물론 여객이용료도 최대한 저렴하게 고속전철을 건설하려면 기존 철도를 활용하여 대구에서 부산으로 직선거리를 달려야했지만 왜 경주와 울산으로 구부러졌는지, 비록 과거 군사정권이 구부렸다 해도 의혹을 가진 기자라면 후배들에게 일갈한 대선배의 지적대로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또한, 국민의 지지로 바뀐 정권은 정책의 일관성을 운운하기에 앞서 과거 정부의 잘잘못을 따질 의무가 있을 것이다. 정책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잘못된 정책에 의해 파괴된 자연과 파괴된 자연에 의해 위협받는 후손의 생명은 사업자가 임의로 계산한 손해의 수십 배 비용으로도 결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38일과 45일, 그리고 58일에 이어 100일에 걸친 지율의 단식으로 국책사업이라는 무소불위의 개발관행에 민주적인 제동을 걸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2월 7일, “사회갈등 조정기구 만들겠다”고 밝힌 청와대 이강철 수석의 발표에 고무적이긴 한데, 어떻게 사회갈등 조정기구를 만들겠다는 건지 도무지 미덥지 않다.
시민합의를 주창하자마자 원전수거물센터로 이름을 바꾼 핵폐기장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신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데, 역시나 이 수석은 사회갈등 조정기구가 필요한 이유를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막대한 예산집행을 가로막고 당초 계획을 변질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산낭비가 단식 때문일까. 투명하지 못한 기획과 개발업자의 의견만 반영하는 일방적인 행정추진과 무관할까.
이 수석은 “전문가 그룹이 모여 공론을 통해 제도적 차원에서 사회갈등을 사전 조율하고 예방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는데, 사회갈등은 전문가 그룹의 노력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구속력 있게 포함되어 납득할 수 있는 합의과정을 투명하고 충실하게 실행하며 민주적인 결론을 유도해야 한다. 사전에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제도와 절차를 근거로 합법을 강압적으로 주장하며 힘과 돈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드는 관행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취재하는데 인색했던 언론들이 단식이 끝나자마자 조용해진 마당에 이 수석의 약속이 공허해질까 불안하다.
단식을 마치며 “힘겨운 시간에 함께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힌 지율은 “마른 땅에 심어진 생명의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그 영지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후손의 생명을 지키려 했던 그이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땅의 언론들과 정부도 시민사회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의 지적이 망언으로 끝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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