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 기독교적 접근방법은?
사회와 모든 일반학문은 인간의 힘으로 오로지 제도적, 기술적, 가치적 등으로 환경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독교 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개선함으로써 가능하다.
첫째,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원리에 대한 창조환경의 연구이다. 어떻게 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했는가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행위 및 성령의 돌봄으로 말미암아 우주 및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이 신의 사랑과 은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무(無)에서 유(有)로의 순간적인 창조와 창조된 우주를 6일간에 걸쳐 혼돈상태에서 질서상태로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창조방법에 대한 연구가 그 내용이 될 것이다. 또한, 인간이 절대적 초월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창조과정의 연구를 통해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인간이 목적 없이 허무하게 살다가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론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생명의 가치와 경외를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엄숙히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나님이 지은 창조세계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관리의 책임이 특별히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환경에 대한 지배권이 아니라 관리권을 부여받았고, 이에 따라 청지기의 입장에서 환경을 잘 관리하고 보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둘째,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환경오염 및 파괴에 대한 연구다.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에 의해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과 에덴동산에서의 복된 삶을 인간이 어떻게 상실하고 오늘날과 같이 슬픔과 고통아래 놓인 비극적인 존재로 전략하게 되는지를 연구해야 된다.
환경문제는 태초 하나님과 인간간에 이루어진 아름답고 조화로운 창조질서 및 위계를 불신과 교만으로 깨뜨려 인간 상호간의 조화 및 인간과 피조계의 조화가 깨어져 남겨진 악의 부산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피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때, 즉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다.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벗어남이 죄이며, 단순한 윤리적인 환경오염 및 파괴행위도 모두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되므로 바로 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이 없이는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셋째, 인간회복 및 구원의 역사에 대한 창조환경의 복원 연구이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됐다. 그 관계를 영원히 청산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창조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회복 및 구원에 대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아담 이후 이미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로 말미암아 죄인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초로 허용된 낙원인 에덴동산의 문은 굳게 닫혀 버렸지만, 반면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인간 구속의 역사를 새롭게 주도해 가고 있다.
즉, 은혜언약과 구원언약을 통해 복락원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여기서 복락원이란 최초의 에덴동산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받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인간을 유혹하여 낙원을 상실토록한 사단(간교한 뱀)에 대한 예수님의 최후의 승리로 인하여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인간이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다시금 하나님과 정상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오로지 창조·타락·구속에 의한 이론과 행위로 온전케 되는 믿음을 통한 실천방법을 일치시키는 연구를 통해 이 땅위에서 인간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함으로써 환경문제를 해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학문의 환경 접근방향
우리 인간은 경제개발만으로는 번영을 누릴 수가 없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개발정책의 방향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즉,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높은 경제성장과 양질의 환경보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경을 보전할 수 없는 개발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개발과 환경보전은 상호 상반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문제를 해결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인간의 책임과 창조환경으로 복원기술의 개발 등에 관한 교육과 연구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오직 기독교적 학문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가 있다.
우리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이므로 교육과 연구가 우선적으로 진리탐구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자유케 되는가? 아니면 진리를 알기 위하여 자유로워져야 하는가? 왜냐하면 전자가 기독교적 학문(신본주의)이다. 즉, 후자는 인본주의를 강조하기 쉬워 여러 가지 사회문제는 물론 오늘날 창조환경의 위기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주 만물의 근원적인 생성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사랑하여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랑을 하지 않고는 만물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만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의 극치가 인간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존재 바탕이 되었다.
인간은 사랑을 떠나면 하나님의 형상도 다 잃어버리고 만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자 인간의 삶은 기반을 잃어 버렸고 자연은 파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섭리에서는 인간과 자연은 공생하도록 지어졌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고,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라”고 명령했다. 에덴동산을 잘 다스려서 가꾸고 지켜야 아담이 그 속에서 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 자연 환경도 같이 타락했다. 자연도 저주를 받고 죽음 속에서 탄식하게 된 것이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자연 속에 죽음이 꽉 들어찬 것은 사람의 타락 때문이었다. 타락한 인간은 자연을 가꾸지 않고 자연을 지키지 않았다. 자연을 파헤치고 가꾸지도 않았다.
공기가 오염되고 하천과 호수가 오염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땅이 중금속으로 자연이 죽게 되면 인간도 죽게 되는 것이다. 오염된 물을 마실수 있는가? 중금속으로 오염된 채소를 먹을 수가 있는가?
이제 공기도 사랑하고, 물도 사랑하고, 꽃 한 송이와 풀 한 포기도 사랑해야 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며,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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