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유럽 일부 지역에서 80년대부터 제기되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힘을 받아 실천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이해하기 어렵다. 관심을 가지려 해도 일반인들은 머리에 쥐가난다. 일반인들만이 아니다.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쳐 부르며 미처 옷 입을 겨를도 없이 목욕탕을 튀어 나올 때 호기심 영역이던 ‘과학’과 장인들의 손재주에서 출발한 ‘기술’이 ‘과학기술’로 결합하자, 같은 방면에 종사하지 않는 전문가도 어려워 할 정도로 과학기술은 난해해지고, 개개 과학기술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대해졌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인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선용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으나 과학기술 자체는 중립적인 것인가. 연구비가 막대하게 들어가면서 거대해진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을 주장하기 민망해졌다. 연구비를 제공하는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침공 시 보여준 가공할 신무기는 미국의 패권을 세계에 과시하게 해주었고 시장을 석권한 항생제나 발기부전 치료제들은 반도체 이상으로 기업의 이익에 충성한다. 패권은 전쟁을 통해, 부가가치는 광고를 통해, 배타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기술은 일반적으로 복잡할수록 시민들의 이해와 멀고, 그럴수록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유전자조작 식품을 개발한 과학기술과 자본은 안전을 강조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주장도 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운다. 배아복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리지 않고 인류복지라고 자랑하는 생명공학자가 있고, 생명윤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문사회 전문가도 있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시민들은 막연히 불안해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기대한다.
자본이 제공하는 편의를 말초적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거나 세금을 내어야 하는 시민, 즉 소비자들은 과학기술에 내재하는 부작용에 속수무책이다. 정책결정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조작과 배아복제 논란으로 골치 아픈 생명공학이 더욱 그렇다. 전문가에게 질문하면 복잡한 기호가 난무한다. 알아들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전문용어를 쏟아낸다.
핵 산업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산업도 마찬가지다. 핵을 후손에게 물려줄 청정에너지로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체르노빌 사고를 예로 들며 후손을 위협한다고 반박하는 환경단체와 전문가도 있다. 핵연료를 채굴쪾정제쪾운송쪾사용쪾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지만 전문가들을 믿고 안심하라고 주장한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된 소비자들이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과학기술일수록 시민들의 판단에 정책결정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럽 일부 지역에서 80년대부터 제기되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힘을 받아 실천되고 있다. ‘합의회의’라는 제도가 그 좋은 예다. 불편부당한 각계각층의 보통 시민들이 패널로 모여 전문가의 도움 속에 과학기술 정책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합의제도 중의 하나로, 1998년과 1999년 우리나라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주최로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 그리고 “생명복제기술”에 관한 시민들의 의견을 합의회의로 청취한 바 있다. 과학기술에 무지할 것 같은 일반시민들도 훌륭히 참여하여 합리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걸 합의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뿌듯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말끝마다 “국민들을 위하여!”라며 가만히 있는 국민을 들먹이는 정부는 마땅히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합의회의에서 투명하게 도출한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과학기술 정책결정과정에 적극 참고해야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합의회의는 일과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생명공학의 정책을 관여하는 당국에서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합의회의에 참가한 시민패널과 전문가들은 물론, 옆에서 지켜본 많은 이들이 성공으로 평가한 바와 관계없이, 사려 깊게 이끌어 낸 시민들의 의견은 일부 생명공학자의 논리에 치우친 당국자에 의해 무시되고 말았다.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고했건 하지 않았건, 이미 두 차례 시민들의 의견을 성공적으로 도출한 바 있는 합의회의를 이번에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준비하고 있다. 올 10월말, “시민들이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미래를 다룬다”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전원개발 관련 정책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묻고자 준비하고 있다. 지적되는 대의제 민주제도의 약점과 같이, 자료를 숙지한 시민패널이 다수결로 의사결정하는 요식이 아니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중시한다.
앞으로 전개될 합의회의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자. 우리 에너지정책에 대립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10여명의 시민패널에게 시민 수준으로 이해 가능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며 자신의 주장을 성심성의껏 펼칠 것이다. 전문가들의 상반된 의견을 듣고 질문서를 주최측에 제출한 시민패널은 답변에 나선 전문가패널에게 질문과 보충질문을 던지고, 전문가패널의 논의과정을 공개적으로 지켜볼 것이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소화한 시민패널은 그들만의 논의를 거듭하며 소비자의 처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할 것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전국의 관심있는 시민들에게 시민패널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핵정책을 비롯하여 우리의 바람직한 에너지정책에 관심이 있고 고단한 합의회의 과정에 성실히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시민패널에 응모할 수 있다. 계층, 직업, 나이, 학력, 지역, 성별들에 치우치지 않은 시민은 우리 에너지 정책에 선입견이 없어야 한다. 주최측은 그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다.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참여과학의 광장에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자 하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기를 바란다.
강조하지만, 전문가와 시민사회에서 논란되는 과학기술의 정책은 밀실에서 결정될 수 없다. 복잡할수록 시민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참조하여 과학기술 정책을 민주적으로 도출해야 한다. 따라서 논란되는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토론하여 합의로 도출한 시민들의 의견은 참여정부에서 결코 가볍게 취급할 수 없어야 옳다.
이미 두 차례 열린 합의회의 결과는 정부가 백안시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그런데 미덥지 않다. 참여정부다운 믿음을 시민사회에 주지 못한다. 차제에 합의회의가 정책된 유럽의 모델을 믿을 수 없는 정부가 아닌 어느 정도 물갈이 된 국회에 제안하고 싶다. 의회에 담당부서를 두어 합의회의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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