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도 도롱뇽도 성대가 있다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4-05-22 15: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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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참 이상하다. 다른 종류들은 사람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줄행랑치기 바쁜데 어슬렁거리기만 한다. 겁을 상실했나. 언젠가 김포 어디에서 농수로의 두꺼비 알을 생으로 걷어먹은 사내가 복통을 앓다 죽었다는데, 독이 있어 당당한가. 덩어리로 낳는 개구리와 달리 두꺼비는 염주 잇듯 알을 낳는다.
그래서 그럴까. 산란장인 저수지 가장자리를 오물오물 맴도는 새까만 올챙이들은 사람이 손을 넣어도 개의치 않고 이동할 뿐 흩어지지 않는다. 두꺼비의 기억에는 천적이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한 10년 전 경북 어느 산골, 유난히 더웠던 봄날,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두꺼비들이 죽은 황소개구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언론은 양식을 위해 도입했다 골칫덩이가 된 미국산 황소개구리에 천적이 나타났다고 호들갑떨었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
뒤늦게 풀린 날씨가 급히 더워졌고, 초여름으로 착각한 황소개구리가 번식시기를 놓친 두꺼비와 한 웅덩이에서 만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덩치가 큰 황소개구리를 제 암컷이라 믿고 힘껏 끌어안자 두꺼비 피부 독으로 황소개구리가 희생된 기상이변의 현상이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의 귀소본능도 눈물겹다. 하구언으로 모천을 잃은 연어가 일제히 떠났듯, 서해안의 갯벌이 매립되거나 오염되어 수억 마리였던 황금조기 떼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산란을 위해 자신이 부화한 저수지나 웅덩이를 찾는 두꺼비는 어떤가. 더위가 무르익는 초여름, 갓 변태한 두꺼비들이 생활 터전인 산을 행해 일제히 이동하는데, 산란장과 생활 터전 사이에 도로가 있다면 도로는 금방 처참해진다. 덮을 듯 이동하다 자동차 바퀴에 깔려죽고 마는 것이다. 멋모르던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주욱 밀리는 자동차는 두꺼비 산란장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시골집에 보였던 두꺼비를 우리는 떡두꺼비라며 반겼고 엉금엉금 기어가 농사에 피해주는 곤충을 넙죽넙죽 잡아먹는 행동을 장손자 밥숟가락 떡떡 받아먹는 모습과 비교하며 기꺼워했다. 농가의 그 두꺼비들은 요즘 왜 보이지 않을까. 땅꾼들의 남획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구렁이나 까치살모사처럼 정력제로 오인되지도 개체수가 그리 드물지도 않았다. 두꺼비는 사실 농가보다 나지막한 산에 많았는데, 인적 드문 산지에도 통 보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곤충 몰살시키는 항공방제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세대 길이가 짧은 곤충들은 금방 내성을 갖출 터이므로.
우리 산하에 고루 펴져있던 두꺼비가 보호대상이 될 정도로 사라진 것은 오랜 산란장을 매립하는 사람의 개발 탐욕 때문이다. 관개농업은 천수답의 물웅덩이를 없앴다. 새로 조성한 거대한 댐은 낯설고 경사가 급해 짝을 찾기도 알 낳기도 부적당하다. 독성을 거듭 갱신하는 살충제를 하늘에서 땅에서 뿌려대면서 급격히 줄어들던 두꺼비들이 장손자 울음소리 멈춘 농촌에 자취를 감췄고, 인적 드문 곳에 가녀린 집단을 겨우 유지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발된 산하에서 사람들은 두꺼비를 모른다. 학자가 찍은 사진이 실린 생태도감이나 화가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세밀화로 간접 경험해야 한다.
경부고속전철이 터널로 지나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천성산, 그 천성산의 맑은 계곡에는 꼬리치레도롱뇽이 산다. 환경부 지정 보호대상종인 꼬리치레도롱뇽 역시 두꺼비처럼 우리 산하에 두루 분포했지만 최근 거의 자취를 감췄다.
회색도시를 피해 몰려드는 인파로 계곡이 오염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산간 구석마다 파고드는 도로가 원인이었다. 공사할 적마다 흙탕물을 계곡에 뒤집어씌우자 수온이 높아지고, 먹이사슬이 파괴된 계곡에서 속속 멸종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식지가 드물어지면서 보호종으로 지정됐지만 남은 지역도 개발에서 예외가 아니다. 꼬리치레도롱뇽이 집단 분포하여 눈을 휘둥그래하게 하는 천성산도 마찬가지지만 두꺼비가 떼로 산란하는 청주의 ‘원흥이 방죽’도 그렇다.
토지공사가 하필 그 자리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고집이다. 다정다감한 전설과 박제된 도감으로 겨우 느꼈던 두꺼비를 직접 만날 수 있어 시민들은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를 조직하며 보전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지역 종교인들이 ‘생명문화기도회’를 연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공사는 법원과 검찰청까지 유치하며 원흥이 방죽과 주변 생태계를 시멘트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으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방죽을 법원과 검찰청의 조경용 호수로 계획하는 토지공사는 두꺼비 보전을 주장하는 시민들에게 산 뒤편으로 이어지는 이동통로를 제안하지만, 두꺼비의 눈높이가 아니다. 그쪽도 개발이 계획돼 있지 않은가. 대체 산란장 운운하지만 두꺼비는 “네가 알을 낳냐!”며 화를 낼성싶다.
두꺼비가 볼 때 꽃으로 장식된 이동통로도 어이없고 좁아터진 대체 산란장도 터무니없지만, 문제는 생활 터전을 모조리 없애는 인간의 탐욕 자체다. 동원된 철거용역업체의 폭력으로 격분한 청주시민들은 원흥이 방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벼른다. 단순히 두꺼비의 생태계 보전 차원을 넘어선다. 물려줄 문화요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아니고, 도롱뇽에 무슨 성대가 있나? '살려주세요' 라니!” 경부고속전철 공사를 맡은 사람들이 지율스님을 향해 냉소적으로 내뱉고 싶은 말일 것이다. 지율스님과 20만 명의 ‘도롱뇽의 친구들’은 천성산의 꼬리치레도롱뇽을 대리하는 환경소송을 현재 진행 중이다.
지하수맥을 내려뜨리는 터널은 꼬리치레도롱뇽에게 치명적이다. 새벽녘 기도하다 문득 “살려주세요” 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의 애원을 들은 지율스님은 38일 단식과 38일 3천배를 올렸고, 45일 단식까지 감내했다. 법원의 소송 적격 기각에도 굴하지 않고 항소를 준비하는 지율스님은 감수성이 유별날까. 아니다. 차가운 합리주의에 매몰돼 도롱뇽의 호소를 듣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지율스님은 꼬리치레도롱뇽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도 살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도롱뇽도 두꺼비도 성대가 있다. 해부학적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만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꼬리치레도롱뇽과 두꺼비의 가녀린 터전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사람도 회색공간 속에서 피폐해진다. 법원과 토지공사는 꼬리치레도롱뇽과 두꺼비의 경고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래서 천성산도 원흥이 방죽도 지켜주어야 한다. 자연의 소리를 먼저 듣는 그들의 메시지를 더는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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