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태계 순환을 위한 궁시렁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4-01-26 16: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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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동네에서 제일 먼저 흰 고무신을 신은 나는 으쓱거리며 신작로를 뛰며 다니다가 그만 쇠똥 밟고 길게 미끄러져 넘어졌다. 작은 가게들이 납작하게 줄을 선 신작로를 벗어나 처마가 맞닿은 골목을 지나면 펼쳐지던 채마밭과 과수원, 지대 낮은 곳에 논이 넓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휘황찬란한 인천시 주안에 가을걷이가 끝나면 들판에는 무서리가 내리던 시절이었다.
요즘, "세-탁, 세-탁"을 길게 뽑으며 아파트 복도를 내려오는 구성진 목소리와 비슷한 당시의 "똥퍼-. 똥퍼-" 소리. 다른 집들도 대개 그랬지만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던 우리의 옥외 화장실은 한 달에 한번 이상 쌓인 똥을 퍼내야 했다. 당시 밭 주변에 파 놓았던 똥구덩이는 채마밭 주인의 재산이었다. 열무를 걷어내고 김장용 배추를 심기 전에 여름 내 삭혔던 똥을 재활용한 똥바가지로 퍼부으면 우리는 잠시 다른 밭으로 놀이터를 옮겨야 했고, 어머니는 그 밭에서 나오는 채소로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주었다.
난데없던 대형트럭들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토석을 쏟아 부어 우리가 썰매 타던 논이 메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60년대 말, 봐 두었던 납자루를 잡으려 몰려간 논 가장자리의 물웅덩이에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납자루는커녕 개구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향도이촌을 부추겼던 군사독재정권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거듭되었던 시절, 농약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는 물론, 주택개량사업으로 번듯한 외양의 시골 주택에서조차 분뇨는 땅으로 가지 못한다. 정화조에 퍼 올려진 분뇨는 분뇨처리장의 거대한 탱크에 잠시 머물다 바다로 나간다. 수도권의 막대한 분뇨는 군산 앞 바다 250킬로미터 공해상의 지정 투기장에 버려지고. 황해에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적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분뇨만이 아니다. 식품회사의 폐기물도, 하수종말처리장의 슬러지도 거침이 없다.
해마다 수십 조 마리는 올라왔을 조기가 우리나라 연해에서 최근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획이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 알을 낳았던 개펄이 매립 오염되고 쓰레기로 덮여 회귀할 터전이 없어졌는데 올라올 조기가 있을 리 없지 않겠나. 북한강변 강촌의 다리 상판이 10여 년 전 무너져 내린 이유를 단순히 홍수라고 답한다면 함량미달이다. 자체 무게로 교각 위에 걸쳐 있던 상판이 홍수가 밀며 맥없이 떨어지고 만 것인데, 상류 농촌지역의 농사용 폐비닐들이 급류를 타고 떠내려와 상판과 교각 사이의 물길을 겹겹이 막자 발생한 것이다. 그 사건은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
수확 후 폐비닐을 걷어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비닐까지 갈아엎는 어떤 농심은 뿌리의 흡수율을 벌충하고자 남보다 많은 양의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듬뿍 뿌리고 도시 상인에게 나 몰라라 밭떼기로 판다. 홍수 끝에 만나는 하천 주변의 나무마다 주렁주렁 걸려있는 찢어진 비닐들. 이것들은 직선으로 획일화된 한강을 타고 나가 결국 인천 앞바다에서 멈춘다. 그 자리는 제사상에 올라오는 조기가 오랜 동안 알을 낳았던 곳이었다.
플라스틱 유산균 음료수 병들이 호주 해변과 인도네시아 발리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한다. 새우잡이 어선이 낭장망을 들어올리자 쏟아지는 과자봉지 라면봉지 고무장갑 깨진 바가지…, 모두 육지에서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한강수가 지나가는 강화도 주변의 섬들은 어떨까. 악취가 진동하는 폐기물 하치장과 다르지 않다. 흔했던 갈치 홍어 민어 농어는 고사하고 최근 밴댕이에 망둥이까지 사뭇 줄어들었다. 낙지 꽃게는 물론이고 도요새들의 풍부한 먹이가 되어주는 서해비단고동도 전 같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세계 3대 철새 도래지가 무색할 정도로 도요새 물떼새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반짝이는 알루미늄 캔 따개를 먹이인 줄로 착각한 알락꼬리마도요가 주둥이를 찔러 넣었다가 다시는 부리를 열 수 없을 정도로 조여 굶주려 죽는 사례, 좋아하는 해파리로 착각한 백령도 물범들이 떠다니는 비닐과 스티로폼을 낚아채 삼키고 줄줄이 희생되는 사례는 우리 생태계의 사소한 비극을 넘어선다. 막힘 없이 순환해야 할 생태계에서 최근 불거진 병목현상이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웅변한다고 보아야 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자. 서양인이 쓴 생태학 교과서는 나폴레옹 몸에 있던 탄소 한 알갱이가 당신의 몸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어찌 나폴레옹뿐이겠는가. 서해안을 포효하던 장보고의 몸에 있던 탄소알갱이도 물론이겠지만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와 조기, 도요새와 물범의 몸에 있던 탄소도 들어왔을 것이다. 어제의 몸은 상당량 빠져나갔고 다른 생명의 몸을 구성했던 탄소가 새로 들어와 앉는 현상은 우리의 편견으로 볼 품 없다 여기는 황해의 돌고래도, 죽지 못해 살아가는 갯벌의 갯지렁이 민챙이 숭어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과 우리는 살을 나눈 형제인 것이다.
도요새를 보아야 농사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뉴기니 사람들은 요즘 우울하다고 한다. 갯벌 매립과 오염으로 개체수가 격감한 도요새들이 씨앗을 뿌리고 시를 써야 할 봄을 제대로 일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갯벌매립은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시민들의 '삶의 의욕'마저 꺾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매립권한이 있는 것일까. 자신의 생명이 의탁하고 있는 생태계의 순환을 스스로 교란시키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망태할아버지 오신다'는 말에 떼쓰던 아이가 조용해졌던 시절, 낡은 수건이 마른 걸레로, 마른 걸레가 젖은 걸레로, 젖은 걸레가 아궁이 구멍을 막다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던 시절, 생태계의 순환은 요즘처럼 정체되지 않았다. 수요가 공급을 채근하던 시절에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사회로 접어들자 생태계의 순환은 막히고 쌓여 악취를 진동하고 있다. 대안은 없을까. 쓰레기 없던 시절의 가난하지만 아름다웠던 삶으로 흔쾌히 돌아갈 수는 없을까.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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