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자연의 강력한 경고

편집국 | eco@ecomedia.co.kr | 입력 2003-11-27 11: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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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 반복하는 텔레비전 방송사의 행사가 올해에도 다시 연출되고 있다. 할머니 쌈짓돈에서 개구쟁이 코 묻은 돈까지, 수재의연금 모금함을 지나 그 옆에 바싹 붙은 방송 카메라와 아나운서가 잡은 마이크까지 길게 이어진 시민 행렬, 우리 재난구조 시스템의 정수를 보는 듯 하다.
따뜻한 심성의 이웃사랑을 탓하는 게 아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 터진 후 정부에 삿대질 하는 언론사들이 시민들에게 생색내는 행사를 해마다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잘 빨아두면 쓸 수 있는 흙탕물 절은 옷가지나 신발들을 흔쾌히 사주는 시민들이 카메라 앞의 행렬보다 아름다웠다면 그 모습을 방영한 방송사는 새로웠다.
하지만 원가의 절반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팔아야 하는 상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역시 소 읽기 전에 외양간을 튼튼하게 정비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따로 있지 않을까. 소도둑이 출몰하는 길목에 외양간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상식을 먼저 지키자는 말이다.
작년 8월 31일 전남 고흥을 통해 한반도 남단에서 등허리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간 태풍 ‘루사’의 뒷자리를 본 시민들은 허탈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의 벽과 마루를 뻥 뚫고 물이 졸졸 흐르는 모습은 마치 계곡 좌우에 집을 낸 형국이었다.
수마가 마을을 할퀴고 지나갔다고 언론들은 표현했지만 사실 물이 흘러야 할 자리를 막아 마을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오랫동안 마을을 감돌아 흐르던 물줄기를 상류 지역에서 직선으로 획일화했을지 모른다. 자갈채취에 이은 제방공사가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다.
이번 14호 태풍 ‘매미’의 위력은 워낙 강력했다. 육지를 통과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는 게 보통이거늘, 올라오면서 풍속을 높이더니 순간 최대 초당 60미터의 기세를 몰아 여수와 부산과 대구를 차례로 휩쓸고 작년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강릉지방까지 강타한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동해를 지나 일본 열도를 헤집고서야 열대성저기압으로 태풍의 생을 마친 보기 드문 강골이었다. 일본 열도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태풍과 해일이 빈발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안일한 재난 시스템을 연일 비판하는 언론들은 해마다 반복되고 더욱 강력해지는 태풍을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훈수하지만, 사실 이번 매미를 맞은 일본 중북부지방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한반도를 뚫고 들어오리라 예전에 미처 몰랐을 것 같다.
마른 장마철이 지나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잠잠해질 즈음, 아열대지방에서 던진 투수의 변화구처럼 한반도를 정확히 가격하는 늦여름이나 초가을 태풍은 무슨 까닭에 해마다 강력해질까. 사망 실종 120여 명에 피해액이 1조4천억 원이 넘는 매미는 바람이 거셌고, 사망 실종 270명에 재산피해가 6조 원이 넘었던 루사는 빗물의 양이 무시무시했다.
내년 이맘때 한반도 어느 허리를 뒤집을 태풍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수재의연금 모집에 그치는 재난 대비 시스템을 장비가 녹슨 삼지창 휘두르듯 하구헛날 내세우는 우리는 점점 무서워지는 손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옳을까.
이번 태풍만이 아니다. 작년 사상 최대의 홍수로 고통 받은 유럽은 올여름 유래 없는 가뭄과 더위로 수만 명의 목숨을 잃어야 했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상이변은 과학기술이 찬란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슈퍼컴퓨터가 총동원되는 재난 대비 시스템의 방어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 입만 열면 개발을 칭송하고, 거대한 간척사업을, 다목적 댐을,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석탄화력발전소를, 골프장을, 녹지를 훼손하는 크고 작은 개발사업들 반대하는 시민들을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던 언론들은 기상이변의 원인이 분별없는 개발이란다.
원시림 파괴에 이은 사막화, 농경지를 메우는 도시화로 더욱 뜨거워진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농축되면서 태풍은 더욱 거세어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가 아열대화되었다는데, 해일을 막아주던 갯벌을 모조리 메워 개발한 우리는 무슨 수단으로 태풍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매미의 방문을 해안매립으로 맞이했던 마산은 해일 완충지를 무시하고 매립한 해안 면적만큼 피해를 입었다.
다가오는 해일을 안일하게 대처하다 수십 명의 목숨까지 잃었다. 답재할 수재의연금이 있으므로 뒷감당에 문제없을까.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을 들어 나르는 대형 크레인 11기가 한꺼번에 구겨진 부산항은 천재지변이므로 어쩔 수 없을까. 보험으로 처리될 것이므로 마냥 안심해도 좋을까. 작년 수마에 이어 올해 폭풍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을 두고 원망하는 농심과 장바구니 걱정하는 시민들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중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고 위로하면 그뿐일까.
북한산 문화재를 쓸어내린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이어 1959년 850여 명을 희생시킨 역사적인 ‘사라’, 1936년을 1,200여 명을 희생시킨 ‘3693호’, 1984년 189명을 희생시킨 ‘준’, 1987년 178명을 희생시킨 ‘셀마’, 1995년 65명을 희생시킨 ‘재니스’, 2000년 28명을 희생시킨 ‘프라피룬’들과 같이 늦여름에서 초가을 녘 한반도를 기습한 태풍들의 목록은 길다.
희생자 숫자나 산정한 피해액의 크기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강도가 증가하는데 비해 근본적이지 못한 우리의 자세는 여전히 안일하다는 점이다.
더 높고 튼튼한 교각이나 크레인을 더 많은 돈으로 세우는 일, 부서진 방파제를 보수하여 횟집 손님을 다시 유인하는 일, 방조제를 높여 갯벌을 매립하고 강둑을 올려 도로를 확충하는 대처는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다.
누군가 ‘편지’로 표현했지만, 이번 14호 태풍 ‘매미’는 작년 ‘루사’에 이어 더 강력한 경고를 내린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흐름을 저해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이태에 걸쳐 받아든 우리는 어떤 반성과 대책을 세워야 할까. 외양간을 아무데나 함부로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 운영위원,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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