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험에 사용하기 위한 박쥐를 포획하기 위해 경기도, 강원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등의 야산을 헤집고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 의해 간첩으로 신고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폐광 속에서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당을 주고 인부들을 사서 봉고차로 옮겨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박쥐의 서식지는 동굴 외에도 폐 가옥의 처마 밑, 바위의 틈새기, 고목의 빈 구멍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동굴은 연중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고 박쥐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족제비, 올빼미, 매 등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박쥐들에게는 가장 좋은 보금자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연동굴은 석회암 동굴이 대표적인데, 석회암 동굴은 수적으로 많기도 하지만 형태가 복잡하고 다양해서 사람이나 딴 동물들의 접근이 쉽지 않으므로 박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식처가 되고 있다.
인공 동굴로는 금, 은, 구리 등의 광물을 채취한 후 방치한 폐광이 일반적인데, 석회암 동굴들이 관광이나 탐사의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개방됨에 따라 폐광들도 박쥐들이 선호하는 서식처가 되고 있다.
박쥐는 동굴 벽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다. 박쥐가 일반 동물들과는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 동안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이유는 다리가 거의 퇴화되어 힘줄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박쥐의 몸을 지탱해 주지 못하고 그저 박쥐의 몸을 매달리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박쥐의 발톱은 고리나 낚시 바늘처럼 동굴 벽의 요철에 걸릴 수 있으며, 매달린 형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완벽한 것이어서 박쥐는 죽은 후에도 그대로 매달려 있기도 한다.
나는 광산 지역을 돌아다니다 어느 곳에서 광부들이 갱내에서 잡은 박쥐를 구워서 소주 안주로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참새구이와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는 그들이 막장에서 일을 하는 광부들이고 술 안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박쥐가 작은 토끼만한 것도 있고 고기도 냄새가 별루 나지 않아 식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박쥐는 고기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웬만한 비위가 아니고서는 식용으로 하기가 곤란하다. 그저 약재(藥材)용으로나 안성맞춤인데 이것도 박쥐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무분별한 포획을 법으로 금지해야 할 것이다.
박쥐 자체도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함을 주는 동물이지만 자연의 생태계란 서로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 박쥐의 멸종은 다른 생물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굴 내 어둠침침한 곳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생물들이 살고 있다. 노래기, 딱정벌레, 새로, 갈로와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박쥐의 배설물을 주요 먹이로 삼고 있다.
동굴 속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으므로 식물은 자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굴의 서식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박쥐의 배설물이나 시체 등이 없다면 이 생물들은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박쥐의 암수는 언뜻보아서는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몸의 형태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식기를 살펴 구분하게 되는데, 수컷은 외부로 생식기가 돌출되어 있고 암컷은 젖꼭지가 튀어나와 있다. 암컷의 젖꼭지는 새끼를 낳은 뒤에는 더욱 두드러지게 튀어나오게 되어 이사실만 알면 암수의 구별이 어려운 건 아니다. 이 암수 박쥐들은 절벽에 매달린 채로 짝짓기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 박쥐 중에 가장 개체 수가 많고 몸집도 큰편인 관박쥐의 경우 첫째 손가락의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뒷발로 벽에 매달린 채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마주보고 짝짓기를 한다. 반면, 다른 박쥐들은 날개를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수컷이 암컷 뒤에서 날개막으로 암컷을 껴안은 자세로 짝짓기를 한다.
박쥐들의 분만도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박쥐들은 대부분 7, 8월에 새끼를 낳게 되는데 관박쥐의 경우는 한번에 1마리를 낯지만, 집박쥐 등 딴 박쥐들은 3∼4마리까지도 낳을 수 있다. 세계 각 지역에 분포하는 박쥐는 18과 1,000여 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박쥐는 3과 20여 종이다. 그러나 박쥐에 대한 연구가 딴 동물에 비해 미진한 편인 점을 감안하면 이 종의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박쥐가 보유하고 있는 질병의 원인체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1987년도부터 1989년까지 전국의 동굴과 폐광 등을 찾아다니며 1,000여 마리의 박쥐를 포획하였고, 이 중 종류별로 453마리를 대상으로 선정하여 실험을 실시하였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박쥐는 귀여운 측면도 있는 동물이며 같이 지내볼수록 애착심이 드는 동물이어서 나는 부득이 내 실험에 사용될 수밖에 없었던 박쥐들에 대해 사죄하는 심정을 지금도 갖고 있다.
박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먼저 에테르로 전신을 마취시킨 후 심장에서 채혈하여 혈청을 분리했다. 다음으로 박쥐 전신을 해부하여 뇌, 간장, 신장, 폐장을 분리하여 전자현미경, HI법, 면역 형광 항체법 등을 사용하여 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박쥐에서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각종 병원체의 항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종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뇌염 바이러스(74%), 한탄바이러스(3.6%),
쯔쯔가무시병(3.3%), 발진열(1.8%),
시베리아 홍반열(3.3%), 타이 홍반열(4.4%)
나는 이 결과를 토대로 내 박사 논문인 「한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의 일본뇌염 바이러스, 한탄바이러스 및 리케치아 감염에 관한 연구」에서 최초로 박쥐가 일본뇌염 바이러스, 유행성 출혈열, 한탄바이러스 등 사망률이 높은 출혈성 질병을 옮기는 보균 동물임을 밝혔다.
일본뇌염은 1912년 일본에서 학계에 보고된 바 있으며 1924년, 1927년, 1935년, 1948년 등에 대 유행을 거쳐 연구 업적이 쌓아짐에 따라 독립된 질환으로 의학계에 큰 관심사가 되었다. 일본뇌염은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호주, 필리핀, 중국, 만주, 극동아시아 전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과학적 근거로서는 1949년 김00 등에 의하여 말, 소, 돼지 등에서 항체를 보유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연구업적으로는 사빈(Sabin)이 주한미군 환자 부검재료에서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분리했고, 1949년에는 이00, 김00 등이 바이러스를 분리했으며, 일본에서는 박쥐에서 항체 보유에 대한 실험을 한바 있으나, so 연구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HI 방법으로 박쥐 혈청 중 일본뇌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검사를 실시했고, 박쥐 뇌에 JEV(나카야마 주)를 주사하여 증식 여부를 확인하였다.
한탄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검사는 1951년 한국동란 중 중부전선 금화, 철원을 중심으로 주항 유엔군 중 수백 명의 유행성 출혈열 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장되었다. 증상은 발열, 두통, 구토, 쇠약, 단백뇨, 신부전증 등이며 진행되면서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병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학자가 동원되었으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였다.
1976년 이00 등은 등줄쥐의 폐조직에서 원인체 바이러스를 분리하여 한탄 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다. 그후 1980년에는 유행성 출혈열과 유사한 질병들을 신증후 출혈열로 통일하여 부르기로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수백명의 환자가 농부, 군인 중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탄바이러스에 대한 자연계 숙주동물로 들쥐나 집쥐가 알려져 있으나 박쥐에 대한 조사는 없었기에 본 실험을 실시하였다.
리케치아에 대한 항체검사에서 리케치아는 자연계의 숙주동물로 들쥐가 있고 매개체로는 좀진드기(Mite), 참진드기(Tick), 벼룩(Flea) 이(Louse) 등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 말기와 한국동란 중 많은 환자가 발생하였으나 1968년 이후부터는 발생보고가 없었다. 최근 1984년부터 갑자기 리케치아에 의한 환자가 우리 나라에서 많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박쥐도 이의 중간 숙주동물인지를 확인하고자 실험을 실시하였다.
나는 국내에 서식하는 박쥐가 사망률이 높은 일본뇌염 바이러스, 유행성 출혈열, 리케치아 질병의 보균동물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히면서, 앞으로 박쥐에 대한 병태기전을 규명하여 자연환경에서 바이러스 질병의 생태에 대한 보다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박쥐가 사망률이 높은 출혈성 악성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박쥐에 물리지 않더라도 박쥐에 배설물에 섞여 있던 바이러스가 바람에 날려 사람의 호흡기, 피부의 상처 등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으며, 특히 등산, 골프, 동굴탐사 등에 갔을 때는 반드시 손, 발, 몸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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