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가 인류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적극적인 사회운동으로 변모된 계기는 1962년 미국의 레이첼 카슨이라는 여성학자가 쓴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 때문이었다. 미국 연방 야생 동·식물보호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이 여성은 이미 바다의 역사와 관련된 몇 권의 저서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환경오염에 관한 저서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게 ‘세계를 바꾼 책들’의 하나로 평가되는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이다.
농약, 살충제, 제초제 등 인간이 영농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화학약품들이 자연으로부터 봄과 새들의 소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얘기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화학물질의 남용이 생태계를 어떻게 교란시키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거나 일부 알려졌어도 성장에 대한 꿈에 도취되어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환경문제가 곧 발등에 떨어질 불이 될 것을 간파한 미 당국에서는 환경보호청을 발전시켰고, 시민단체들은 ‘지구의 날’을 발족시켜 환경운동의 새 장을 열게 했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도 2002년도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60년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것이나 그 때의 우리사회는 환경문제 따위는 안중에 있었을 리 없다. 그래서 번역자체도 충실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일반의 관심도 끌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질적이나 양적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해졌지만 여전히 이 책은 환경전문가는 물론 일반 식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환경문제에 관한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고 모두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실상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도 지구상에는 매년 30,000여 종의 생물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해마다 남한 정도의 면적이 사막화 되어가고 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20∼30년 후에는 지구상의 생물 중 ¼정도가 멸종될 것이라고 한다.
한 생물의 사라짐은 그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딴 생물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인류가 생물로부터 얻었던 자원들, 즉 식량, 연료, 의약품 등이 치명적인 위해를 입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생태학자들은 지구의 환경위기가 결코 과학기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해결책은 자연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전환, 즉 일종의 종교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서구에서 발원된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 때문이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신으로부터 유일하게 선택된 피조물이며, 자연은 신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마련해준 것이라는 관념이 오랫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 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연과 인간을 별도의 개체로 여기게 만들었으며,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해서 유용하게 사용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 결과는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의 착취와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서구 여러 나라들이 아직도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영국의 과학자 러브 록은 ‘가이아 가설’이라는 것을 제창했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으로 최초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지를 만들고 신과 인간을 낳았다고 전해지는 신이다. 가이아 가설에 의하면 지구는 생물, 대기, 바다, 육지 등의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며 생존해 가는 일종의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에서 인간은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특이한 존재도 아니고 창조의 중심도 아니다.
이 이론이 환경론자들에 의해 종종 인용되는 이유는 자연은 결코 인간의 물질적 만족을 위한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이 환경을 파괴할 경우 지구 유기체의 생존을 위한 자기 조절 가능이 심각하게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일반적으로 그 기원은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은 성격의 규명이 가능하고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를 이용해서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데 계몽주의 사상가 로크(j. locke)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신은 인류를 위해 지구를 창조했으며, 인간 삶의 필요에 따라 지구를 잘 쓸 수 있는 이성을 주었다. 따라서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피조물들은 모두 인간을 위한 신의 선물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곧 자연 개발의 역사로 이어졌고, 개발도 삶을 위한 실질적인 필요를 넘어 물질적 풍요를 위해 성장 그 자체를 끝없이 추구하고 된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자원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공기나 물, 그리고 대지도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따라서 자원의 과도한 소비는 후손들에게 위해가 될 수밖에 없으며, 공기, 물 등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은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은 서로간에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중 어느 한 구성요소가 변화하게 되면 그 영향은 환경 전체로 파급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변화가 자연의 자정작용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결국 자연의 조화와 질서가 깨뜨려지게 된다.
이러한 각성은 여러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무시되어 오다가 오늘날과 같은 오염된 환경과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기까지에는 인구의 과도한 증가가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환경문제는 일반적인 사회문제와 동일시 할 수 없는 차원이긴 하지만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로백의 주장처럼 ‘인간은 다음 세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식물과 동물들을 쓸어내 버리고 마침내 자신이 황폐화시킨 지구 위에서 스스로 끝장나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다시금 동양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 동양에 있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옛 동양화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은 산수(山水)와 더불어 자연을 구성하는 한 구성원에 불과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동양의 사상의 바탕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자연에 대한 순응이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으로 대변되는 도가사상에서는 자연을 거대한 순환체계로 보고 이 체계 안에서 만물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며, 따라서 인간이 무리하게 작용하여 균형과 조화를 깨뜨리면 자연의 순환체계의 파괴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교사상에서는 자연의 각 개체들은 물질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과잉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우주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며, 모든 생물체나 자연 현상도 모두 불체이므로 인간은 자연을 자비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욕심과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욕망이 환경 파괴를 유발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저서 「동방견물록」에서 중국 원(元)나라의 찬란한 문명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중세기의 유럽에서는 그의 얘기가 너무 꿈만 같은 얘기여서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는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 썼다. 그리고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되었던 종이, 화학, 나침반, 인쇄술 등은 중국에서 발명되어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으로 전해졌다(사실 최초의 인쇄술은 우리 한국에서 발명되어 중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근대 문명은 서구에서 먼저 부흥하였고, 서구 여러 나라들은 이 문명을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달시켜 강대국이 되었고 세계를 지배했다.
서구에서 동양의 문명을 전수받고서도 오히려 이를 능가하고 결과적으로 동양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이 우월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탓이었다. 합리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은 이기주의적이고, 지배적이고, 근시안적인 세계관과 맞물려 빠르게 문명을 일구어 낼 수는 있었으나 그 문명은 오늘날과 같은 자연과 환경의 침해를 담보로 했던 문명이었다.
동양의 지혜는 일찍부터 인간과 자연은 별개가 아니며, 따라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생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장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天地與我竝生立萬物與我爲一 :
천지는 나와함께 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다
동양의 성현들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기적 심성을 일찍부터 꿰뚫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비록 문명의 발전은 더디었지만 그 더딤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치피 지구는 하나고 인류도 한 종(種)이다. 따라서 서로 공생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그 종말은 언젠가는 닥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비단 환경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동양의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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