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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는 수북하고 솜처럼 부드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져보면 거칠어요. 왠지 그게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뒷골목, 번쩍번쩍하게 세워진 건물들 사이로 언뜻 들여다보면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채의 낡은 건물. 3층으로 오르면 한구석에 붓으로 알록달록 그린 ‘화실’이라는 단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복도에 묵묵히 꽃피어 있는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한 편이 아련해지게 한다.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문에 그려진 꽃만큼이나 활짝 웃는 얼굴이 취재 일행을 반긴다. 화가 ‘김숙’이다.
다시 찾은 꿈, 그 자리에 맨드라미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아버지께서 미대진학을 반대하셔서 경상대를 입학하게 됐고, 졸업 후에도 그냥 회사에 들어가서 일했어요.”
서울에 봄이 오기 전, 혼란스러웠던 80년대 대학생시절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정치적으로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학교는 휴교결정을 내렸고 화가는 그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니며 미술에 대한 꿈을 다시 꾸었다. 졸업 후 직장생활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때때로 어려운 상황이 찾아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대체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혼란스러웠던 순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다가 어느 순간 맨드라미를 만나게 된 거에요. 잃어버렸던 나의 분신을 찾은 것처럼 맨드라미를 처음 그렸던 순간은 참 특별했어요. 맨드라미 작가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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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나 그리고 또 하나의 나
그림과 떨어져 지냈던 긴 세월동안 그가 겪었을 외로움과 공허, 슬픔, 그리고 소리 없는 열정들이 하나의 씨앗으로 응축되어 꽃을 피운 듯, 작가가 그린 맨드라미에는 화가 자신이 고스란히, 아주 농밀하게 투영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나 개나리 등 다른 것을 그린 그림에는 ‘희망이 움트는 곳’, ‘그 해 여름’ 등 관념 또는 타자가 대상인 제목이 붙은 반면 유독 맨드라미를 그린 그림에는 ‘Heart', '나 그리고 또 하나의 나’ 와 같은 제목들이 붙어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맨드라미의 꽃말과 닮았다. 맨드라미는 곧 또 하나의 ‘김숙’이다.
“맨드라미는 보기에는 수북하고 솜처럼 부드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져보면 거칠어요. 왠지 그게 인생과 닮은 것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아픔과 거친 세월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꼭 거칠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름답게 그리고 싶어요. 부드러우면서도 중첩된 붓터치를 사용하는 것도 그 이유에요.”
그러고 보니 화실에 걸린 대부분의 그림들이 나이프를 즐겨 쓰거나 붓터치가 두텁게 되어있는 유화들이었다. 간혹 수채화들도 걸려있었지만 매우 드물었다. “붓으로 겹겹이 그려낼 때마다 왠지 모를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그러다보니 계속 덧입히게 돼요.”
겹겹이 쌓인 두께만큼이나 그 안에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이 덧입혀진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환희, 절망, 슬픔, 공허, 희망과 같은 인생의 숱한 감정들이 엉겨 붙는다. 한 획, 한 획마다 화자의 열정이 스며든다.
맨드라미, 미완의 시간을 걷는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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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에 열었던 개인전 ‘내 삶에 대한 사색’에는 맨드라미 수채화에 ‘나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는 제목을 달아 맨드라미 그림이 김숙 화가의 자화상을 표상하는 암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한국미술협회, 신작전 등 여러 미술협회에도 참여하면서 작품의 소양을 넓혀가고 있고, 개인 화실을 열어 수강생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엄연한 화가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직은 더 나아가야 할 때라고 덤덤히 말한다.
여전히 미완의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캔버스에 피어있는 맨드라미만큼이나 찬란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뇌와 고통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숙명 같은 것. 하지만 흔들리며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화가 ‘김숙’의 앞으로의 행보도 그럴 것이다.
비록 부족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기를 바란다며 수줍게 웃는 화가의 미소에 맨드라미 향기가 피어오른다.
김숙(金 淑 , Kim Sook ) 프로필
■ 개인전 7회 조형갤러리, 파란네모갤러리, KBS방송국, Q갤러리, 서울미술관, BLUE갤러리, 남서울비젼센터
■ 부스개인전 9회 국내아트페어; MIAF, SCAF, 2010~11 아서울전, 2012 구상대제전, 2013 구상대제전, 국외아트페어 북경관음당아트페어, 當代中韓優秀美術作品展, 지고미술관
■ 그룹전 및 단체페어전 2013년 KIAF(코엑스), AHAF아시아호텔아트페어(콘레드호텔), 화랑미술제(코엑스), 2013~12년 SOAF(코엑스) 국내외 그룹전 및 초대전 120여회
■ 수상경력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수채화협회공모전, 목우회공모전 등 다수 공모전에서 수상
■ 현재 한국미술협회운영위원, 신작전, 대한민국회화제, 한국수채화협회, 서울아카데미회, KAMA, 서울미술협회, 성동미술협회, 경향미술협회, 각종미술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 문화센터서양화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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