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의 선물’ 흙과 물과 불, 신이 내린 그 선물로 인간은 긴 새벽을 깨고 삶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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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 선생이 도자기를 빚고 있는 모습. |
장중 하면서 고급…전무후무 ‘사계대명’ 제작·소장
도자기는 장인정신이 빚는 과학이자 예술이다.
석봉도자기미술관은 지난 2002년 경기도 여주에서 도자기문화의 발상지인 설악권으로 이전, 개관하게 됐다.
설립자인 조무호(79) 선생은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초로 도자기와 미술을 접목해 도자기회화(도자기미술)를 개척했고, 아울러 평면 도자기회화의 선구자이다.
처음에는 공기 좋고 경치 좋고, 흙의 질도 좋아 자신의 호를 따 이곳으로 옮겼는데, 나중에 설악권이 도예문화의 발상지임을 알게 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우리의 도예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전수했다는 기술은 오늘의 일본이 자랑하는 화려한 자기공예의 원류가 되었다.
화려함으로 말한다면 일본의 도자기가 조금 앞서고 있지만, 일본 것보다 더욱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 도자예술을 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여느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우리 도자기의 장중함과 고급스러움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석봉도자기미술관의 대표적 소장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접시인 120Cm의 ‘사계대명(四季大皿)’으로, 4점(春, 夏, 秋, 冬)을 만드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니, 가히 그 수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접시는 크면 클수록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50cm가 넘으면 대명(大皿)이라는 닉네임이 붙는다.
이 작품은 1993년 한국기네스 위원회에서 인정을 받고 서기 1994년 기네스북에 등재, 2010년 한국기록원에 인정받은 자기질 환원도자기로서 세계 최초이자 최고 큰 접시이다. 본 대명은 습식 물레방식으로 만드는데 건조 및 가마 소결상태까지 약 17% 수축이 되기 때문에 처음 물레를 찰 때에는 지름을 1m 28cm 크기로 만들어야 한단다.
문화예술 서울 집중…지역민 위해 속초 개관
석봉 선생의 50년 도공인생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선생은 1960년 군대를 제대한 후 어렵게 직업을 구하던 중, 단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대한도자기공업주식회사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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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화백자선경 |
직업인으로서 당시 도자기라보다 그저 막그릇에 그림을 그려 넣던 선생은, 1964년 서울 뚝섬에 도자기 공방을 직접 차리면서 이 시대 최고의 도공이 되는 계기가 됐다.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해가던 선생은 마침내 1997년 10월 1일, 우리나라 도공문화에 길이 남게 될 도자기박물관을 경기도 여주에 개관했다.
1997년 11월 3일 경기도의 테마미술관으로 지정됐고, 도자기문화학교를 개설하면서 도예도 가르치다가 2002년 3월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모든 문화적 혜택이 서울에만 집중돼 있잖아요. 국가적으로 지방화가 필요하고, 지역 주민들도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기 좋고 경치 어우러진 이곳에 터를 잡았지요. 13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너무 잘 생각한 것 같고, 무엇보다 강의나 행사 참석 많이 안하면서 작품에 열중할 수 있어 좋아요.”
자신만의 기술-도구 개발…최고 도자기회화 탄생
석봉 선생의 독창적이면서도 세계 최고 평가를 받고 있는 도자기회화, 즉 평면도자기 기술은 그의 어려운 판짜기부터 시작된다. 그야말로 곡면 도자기보다 어려운 것이 평면 제작인데, 수축되고 갈라지거나 두꺼우면 잘 안 익고 얇으면 오므라들기 일쑤이다.

그러나 선생의 오랜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12㎜ 두께라는 최적의 평판과 압축주입식 판짜기를 통해 하나하나 최고의 회화도자기를 완성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회화는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도판에 그림을 그려놓는 작업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선생이 특별하게 제작한 시설을 오르내리면서 그림을 그려넣고, 안료 사용부터 건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직접 해낸다.
석봉 선생은 “일반 도자기는 그림으로 가격이 매겨지지만, 도자기회화는 그림으로 값이 정해져요. 또 가격은 판에 따라 결정되는데 작품이 커지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판매 가격도 비싸져요. 보통 열흘 정도 걸리는데, 판화처럼 여러 제품을 동시에 만들어 값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하며 “세계 시장이 좋은 편이고 외국 관광객이 많이 사가요. 우리 도자기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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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친화적 전기 사용…여전한 작품 열정
석봉 선생은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남다르다.
“나무연료로 불을 때면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소요돼요. 지금은 가스나 전기를 쓰는데, 미술도자기는 흠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전기가 청정에너지라서 좋고 도자기도 깨끗해져서 더욱 좋지요.”
선생은 요즘 도자기 작가들의 행실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남겼다. 일부 사람들이 돈이 좀 된다고 너도나도 도자기를 만들어 싼값에 덤핑 판매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기운 빠지기 전에 더 좋은 작품 남기려고 힘쓰지. 또 내 욕심 버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줄 때도 된 것 같아.”
팔순을 바라보는 석봉 선생의 신념과 자존심과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50여 년을 도공으로 살면서 오직 한 길, 도예문화의 발전과 전통 계승을 위해 살아온 석봉 조무호 선생.
1300도가 넘는 고온과의 싸움 멈추지 않고 돌리는 물레가 즐거워서일까. 여기 석봉도자기미술관을 떠나는 손님을 배웅하는 선생의 미소가 환해 보이기만 했다.
[환경미디어 박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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