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호랑이와 표범 멸종?
- 온라인팀 eco@ecomedia.co.kr | 2016-10-07 09:36:00
우리나라에도 호랑이가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는 어디서 온 걸까? 그건 약 3만 년 전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기 한참 전에 있었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종류가 뭐가 있을까? 전국적으로 호랑이는 8가지로 구분이 돼 있다. 인도의 뱅갈호랑이, 중국의 화남호랑이, 수마트라 호랑이, 인도차이나 호랑이, 카스피 호랑이, 자바 호랑이, 발리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등이 있다. 이 중 발리, 카스피, 자바 호랑이는 최근 53년간 멸종된 것으로 확인이 됐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같은 분류인 동북아 호랑이, 학명으로 Panthera tigris altaica로 불린다. 호랑이 종류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시베리아 호랑이는 러시아의 동북면, 만주, 백두산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나타낸 그림 |
호랑이는 대륙성 육식동물로 이미 3만 년 전부터 한반도의 남쪽에서 시베리아 지방을 장악하며 동북별 일대 최강의 포식자로 군림해 오고 있었다.
원래 한반도는 호랑이와 표범이 서식하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드넓은 산악 지역에 엄청난 수의 초식동물 군,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분포 등으로 20세기 초까지 한반도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범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조엔 호랑이가 서울 4대문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목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지어 궁 안에서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었다.
"창덕궁 후원에 범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표범을 잡고 돌아오다" (1465년 9월 14일 세조11년)
"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좌우 포도 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1603년 2월 13일. 선조36년)
"창덕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을 내리다" (1607년 7월 18일. 선조 40년)
불과 85년 전인 1921년 고종 황제 재위시절, 경복궁 안에 호랑이가 나타나 수백 명의 군사가 동원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들의 기록도 역시 서울 내에서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호랑이와 표범이 목격되었고, 사람들이 호랑이에 물려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 많던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다.
당시 조선을 강제 통합한 일본인들은 조선의 호랑이들에게 상당한 경외심을 느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았고, 이들은 임진왜란 때부터 난생 처음 보는 호랑이에 엄청난 인상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인들은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던 호랑이를 잡는 것이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들은 군대 사기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호랑이 사냥을 시작, 조선 내에 야생 호랑이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 시작한다.
![]() |
| △영화 ‘대호’ 일제 강점기 때 호랑이를 잡은 사진 |
호랑이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당시 조선 정부의 책임도 컸다. 당시 조선 조정은 '해수구제', 즉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냥꾼들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하면서 호랑이와 표범, 그리고 늑대를 닥치는 대로 잡아 들였다.
사실 당시 조선엔 너무 많은 호랑이와 표범, 늑대가 설치고 다니는 바람에 이런 조치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공식 기록에 이 정도면 실제 죽임을 당한 호랑이는 500마리 이상, 표범은 2000마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세계 야생 호랑이의 수가 7000마리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로써 한반도의 호랑이와 표범은 사실상 멸종 위기를 맞았다..
1924년 잡힌 호랑이가 마지막 한반도 호랑이로 기록, 이후 공식적으로 호랑이가 남한 땅에서 목격됐다는 증거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표범마저 1950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끔찍한 한국전쟁으로 멸종의 길을 밟았다.
![]() |
|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찍은 마지막 호랑이, |
북한과 연합군 양측이 산악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무자비한 폭격을 가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삼림이 초토화 됐고, 이로써 표범과 호랑이 같은 대형 육식동물들의 서식지는 급감한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산에 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하는 난민들이 급증해 그나마 남아 있던 숲마저 사라졌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당시 농업 생산성 증진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농약을 살포, 그리고 식량 유실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쥐약 살포까지 하면서 한국은 생태계 자체가 괴멸된다.
이로 인해, 늑대와 함께 마지막 육식동물이었던 여우마저 1978년 한반도에서 멸종한다. 여우는 공해가 심한 도심 지역에서도 사는 육식동물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멸종될 정도로 한국의 생태계 파괴는 극심했었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최후의 표범 한 마리가 마을 주민에 의해 생포된다. 당시 1년생 수컷이었던 이 표범은 이후 창경원에 기증됐고, 당시 창경원 직원들은 표범을 극진히 아껴 당시 사람도 먹기 힘든 쇠고기를 매일 주고 여름엔 선풍기까지 틀어주었다고 한다.
이 표범은 극심한 운동부족과 과식으로 비만에 시달렸고, 결국 한국 최후의 표범은 1973년 창경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당시 표범은 전신에 욕창이 심해 박제로도 남길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와 표범은 이렇게 제대로 박제로도, 기록으로도 남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한반도의 늑대 역시 표범과 비슷한 운명을 맞는다. 1968년 최후의 늑대가 포획됐고, 1997년까지 동물원에서 근친교배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더 이상 번식이 불가능해 진 채 사망한다.
![]() |
| △우리나라의 마지막 표범. |
그렇다면 호랑이와 표범이 다시 남한에 생존할 가능성을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한 지역의 야생동물이 50년간 서식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멸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 이 논리에 의하면 한국의 호랑이와 표범은 오래 전에 멸종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최근까지 계속해서 표범에 대한 서식 증거가 발견되면서 이젠 전문가들도 남한 땅에 표범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남한에 표범이 다시 번성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범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10마리 이내에 머물 것이며, 이 경우 지속적인 근친교배 때문에 표범들은 번식력이 극히 떨어지고 결국엔 완전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남한의 호랑이와 표범이 '멸종'이라는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휴전선 때문이다. 휴전선은 대륙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자연 생명체의 이동을 차단해 남한을 생태적 고립 지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설사 호랑이가 북한에서 생존해 번성한다 하더라도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는 한 이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생존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결국 생태적으로 고립된 남한의 대형 육식동물은 다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호랑이와 표범이 멸종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생태를 보존한다면 좀 더 생태계가 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린기자단 박준수, 덕수고>
[저작권자 © 이미디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ttps://www.emedia.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