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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의 도가 사상가, 장자(莊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물 다양성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김한솔 기자 eco@ecomedia.co.kr | 2017-09-28 18:32:13

△ 장자<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공자·맹자·순자·노자·장자·한비자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중국의 수많은 고대 성현들. 그들은 각자의 확고한 신념과 특정한 사상체계를 구축한 뒤, 그 아래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증해왔다.  

 

 

이와 같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수천 년이 흐른 현대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어지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은 시대 상황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다시 말해그들에 관한 서적들은 수천 년 전의 한어 고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고어를 해석하는 데에는 상당한 주관성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드려 이해하는 것은 감상자 개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 환경과 인간, 그리고 생물 다양성 보존에 관한 이야기를 ‘장자의 도가 철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볼 것이다.

 

‘과연 인간은 자연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갖가지 생물들을 어떠한 태도로 맞이해야 하는가?’하는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며 생물 다양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장자와 무위자연(無爲自然)
그렇다면 ‘장자’는 어떤 인물인가? 장자(莊子, 369-286 B.C)는 중국 전국시대에 등장한 송나라의 철학 사상가이다. 동시대를 살아간 유교 사상가 맹자와는 철학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며, 같은 도가 사상가인 노자와 함께 ‘노장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현대인들에게 소개되기도 한다. 장자의 사상은 굉장히 초탈하고 광활한데, 그 사상의 집약체가 저서 「장자」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위진 시대에 편찬된 곽상본이며, 내(內) 7편, 외(外) 15편, 잡(雜) 11편 도합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자의 중심 사상으로는 마음이 가는대로 유유자적하며 노니 듯 살아가야 한다는 ‘소요’, 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물은 통하여 하나가 된다는 ‘제물’, 자기 본연의 상정을 잃지 않고자연의 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양생’ 등이 있는데 이러한 갖가지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장자의 ‘無爲(무위)’이다.

 

무위는 한자 그대로 ‘인위를 가하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흔히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는 단어로 장자의 자연관을 대표하기도한다.이는 말 그대로‘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장자 자연철학의 핵심 키워드인 ‘무위자연’은 한자 텍스트 그 자체의 의미만 이해해도 장자가 자연을 어떠한 태도로 맞이하였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동양의 자연관(自然觀)과 근대화
과거 동아시아에서 자연(自然)은 한자어 풀이를 통해'스스로 그러한것’으로 여겨졌다. 자연은 스스로 생성·변화하여 조화로워지며, 인간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를 복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자는 주체를 부정하고, 주객을 구분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며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합일을 추구했다.

 

실제로 근대 이전의 국지적 환경오염은 대부분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간과 도시, 그리고 자연의 관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특히 개항 이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고, 동도서기(東道西器)·중체서용(中體西用)·화혼양재(和魂洋才)와 같은 슬로건을 외치며 서양의 물질문명을 통해 개화를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실, 서양과 동양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태도의 차이는문화에 있어서 만큼이나 거대하다. 아주 간단히 말해, 서양은 자연을인간이 정복하고 가치에 맞게 이용해야할 하나의 기회자원으로서 인식했고, 그에 반해 동양은 ‘자연과 벗 삼은삶’을 강조하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했다.

 

즉, 동양에서는 자연을 생명의 창조와 완성을 이루는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 했으며생명의 가치와 생명의 조화로운 질서의 원칙을 자연과 더불어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는 장자의 ‘무위자연’한 삶과 그 뜻을 같이 하는데, 장자의 「장자」에서가져온 텍스트의 일부분을 읽어보며 장자, 도가사상 그리고 크게는 동양의 자연관에 대해 사유해 보자.


『莊子(장자)』雜篇(잡편) 庚桑楚(경상초)中
夫至人者(부지인자),相與交食乎地而交樂乎天(상여교식호지이교락호천),
不以人物利害相攖(불이인물리해상영),
不相與為怪(불상여위괴),不相與為謀(불상여위모),
不相與為事(불상여위사),
翛然而往(소연이왕),侗然而來(동연이래)。
是謂衛生之經已(시위위생지경이)
지인이란, 사람들과 땅에서 식량을 구하여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니
사사로운 이익이나 손해에 집착하지 않으며,
서로 탓하지 않고 나쁜 일을 꾀하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일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갔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오는 것,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는『장자(莊子)』의 텍스트를 일부분 발췌한 것으로, 해석 그대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장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서양의 자연철학과는 대조를 이루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제는 현대 동아시아의 자연관과도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계의 모든 존재가치를 오로지 인간에게 쓸모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인정하는 서양의 인간중심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사유 방식이 이제는 서양만의 자연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연을 이용해나가는 모습은 기술적, 경제적 부를 이룩하려는 현대 사회 속 모든 국가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17-19세기, 인간에 의해 멸종된 생물은 4년에 1종 꼴로 총 75종 정도였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에는 1년에 1종, 초-중반에는 1년에 1,000종,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하루에 100~150종씩, 연간 4~5만종이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생물 멸종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30년 안에 전체 종의 1/5 정도, 100년 안에는절반이 멸종될 것이라 예측한다. 심지어 전 세계 영장류의 절반에 달하는 303종이 인간에게 잡아먹히거나 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참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벗으로서 자연은 온데간데없고, 우리 삶의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수많은 생물 종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며생물 종의 연쇄적인 멸종을 통해 자연 생태계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장자가 곡할 노릇이 아닌가.다음 텍스트를 보며 장자의 자연관에 대해 좀 더 생각 해 보자.


『莊子(장자)』外篇(외편) 駢拇(변무)中
長者不爲有餘(장자불위유여), 短者不爲不足(단자불위부족).
是故鳧脛雖短(시고부경수단), 續之則憂(속지즉우),
鶴脛雖長(학경수장), 斷之則悲(단지즉비).
길어도 남는다 생각하지 않고, 짧아도 모자란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아도, 그것을 이어주면 걱정할 것이요
학의 다리가 비록 길어도, 그것을 자르면 슬퍼할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자연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장자의 경고가 느껴지는 대목으로, 기술 발전과 부의 축적이라는 인간을 중심에 둔 가치 판단을 자연에게 덧입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해서 그것에 인위를 가하여 길게 해서는 안 되고, 학의 다리가 길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자를 수는 없다.

 

자연 그리고 자연 상태의 다양한 생물들은 특수한 필요에 의해 혹은 전체의 조화와 공존을 위해 저절로 각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간의 판단 기준에 따라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아서는 안된다. 인간의 이윤 추구에 반한다는 이유로 깊은 고민 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생물 종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을 빼앗는 현대 사회의 인간중심적이고일차원적인 자연관. 이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론화하여 그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때이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물 다양성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자 철학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자연을 파괴하여 기술 발전을 이룩하고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도모하고자 하는 일이 인간 본성에 적절한지, 인류 생존에 유리한 것인지,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떠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등. 장자는 무엇보다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고, 그것의 도리를 따라 인간 중심의 인위를 행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근대화 이후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많은 것들이 파괴되어 나갔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자연은 여전히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그 복원력이 무너져 내려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향해가고 있지만 이제 부터라도 바꾸어 나가야한다. 자연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대한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자연의 자생력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 개발과 그 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면환경문제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은 첨단의 과학기술을 통해 거대 도시의 환경 문제를해결하려는 것과는 다르다. 방법론적이고 기술론적인 지식을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오직 그것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는없다. 즉, 자연 환경과 생물 다양성에 대한 인류의 인식 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시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 철학을 통해 생물 다양성 문제를 논의하려는 이 글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거대한 현대 문명의 흐름을 과연 장자의 생각만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고대 사상가 단 한명의 가치관과 그 이상향이 ‘완전한 정답지’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뚜렷한해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깊게사유하며 다함께 이야기 나누는 일련의 과정을 포기 할 수 없다.

 

‘전자화’, ‘정보화’,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한 지금, 무너져 내리는 자연 환경과 멸종되어가는 생물들이해당 존재 자체의 파멸만을 함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의 소유물이 아님’을 완전하게 인지해야하며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개인적으로, 또 범 국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민해야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생물다양성 사이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현재의 방식을 뜯어고칠 수도 있다. 작은 물음에서 시작한 근원적 가치의 재정립. 이것이야 말로 고전과 인문학의 힘이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린기자단 한나라, 중앙대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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