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야사]새만금 이야기 ⑤

조사단 종료 한달 반만에 보고서 제출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16-05-18 10:43:36

조사단 종료 한달 반만에 보고서 제출
위원장 혼자서 조작했다 비난받아

1999년 5월 11일 제1회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민관공동조사단 민간위원들은 각자 제출한 조사계획서에 의해 활동을 개시했다. 정부와 농업기반공사 위원들은 독자적인 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위원들이 현지 조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을 하고, 간혹 현지 조사에 동참하기도 했다.


효율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 조사결과는 분과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검토와 토론을 거쳐 각 분야의 결론을 내렸고, 매월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한 전체회의에서는 분과위원회의 결론들을 추인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민간위원들은 한 전문분야에서 한 명의 위원만이 참여했기 때문에 전문분야가 모두 달라 해당 위원의 전문분야의 조사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위원의 결론이 그 분야의 결론으로 채택됐다.


전체회의서 경제성 반대논리 제기
분과위원회에서의 논의 결과를 존중하기로 하면서 각 위원들에게는 해당 분과위원 회의에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당부했다. 그 점을 강조한 배경에는 1998년도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에 대해 반대의견이 높아지자 당시 건설교통부에서 경부고속철도사업 타당성 평가를 위해 운영했던 위원회에서의 경험이었다. 그 위원회는 단기간 운영된 위원회였는데 그 때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소위원회를 두었고 소위원회에서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지도록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당시 극렬하게 반대했던 위원 2명이 해당 소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고 전체회의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반대의견을 제시해 전체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결론을 내리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더 복잡하게 찬반의견이 얽혀있는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분과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 전체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 설명된 바와 같이 각 분과위원회의 민간위원 구성을 보면 환경 분과와 수질 분과는 환경단체 추천위원이 더 많았으나, 경제성 분과는 정부 추천위원 4명, 환경단체 추천 2명으로 환경단체 추천 즉 반대 입장인 위원들이 수적으로 열세였다. 더구나 분과위원장이 정부 추천위원이면서 새만금사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농업경제 전공의 충남대 교수가 맡았는데, 반대 입장이었던 서울대 교수가 분과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채 분과 회의가 진행된 경우가 많아 문제의 소지가 되었다. 분과회의에 자주 참석하지 못한 이유로 경제성 분과회의가 주로 충남대가 위치한 대전 지역에서 열려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분과위원장은 2명의 분과위원이 호남지역 교수들이라 서울과 호남의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개최하게 되었다고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들어 대전 개최를 고집했다. 그 결과 전체회의에서 경제성에 대한 반대논리가 제기됐고 경제성 논의 때문에 전체회의가 지연돼 효율적인 회의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고 마지막까지 문제가 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녹색연합 사무총장 사퇴로 소통불편
조사단 회의에 환경단체 대표들이 참관하도록 허용했을 때 사실 환경단체에서 참가한 대표들이 조사단 활동이 끝날 때까지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회의가 거듭되면서 환경단체 대표들도 발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커지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칫 환경단체 대표들이 발언에 의해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발언횟수를 제한했다. 이 같은 제한들이 조사단 활동기간동안 대부분 지켜졌는데 이는 새만금사업 반대 운동을 주관하던 녹색연합의 사무총장이 조사단의 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본다.


당시 녹색연합의 사무총장은 수질 전문가 자격으로 조사단에 참여했지만, 환경단체의 목소리를 위원회 논의과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환경단체에 전달해 조사단 활동과 관련된 내용들이 소통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불미스러운 일로 조사단 위원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면서 소통에 문제가 생겼고, 조사단 활동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어 그 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참여율 30~40% 위원도 3명
공동조사단의 활동기간은 당초 1년으로 2000년 4월 말까지 마무리됐어야 하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추가 조사와 분석이 필요해 세 차례에 걸쳐 기간을 연장했다. 제1차 연장은 2000년 5월말까지 1개월을 연장했고, 2차로 6월 15일까지 15일을 연장한 후 보고서 마무리를 위해 6월 말까지 재연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종합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이견 조율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최종적으로 국무총리실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8월 18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사단 활동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된 후 1개월 반 만에 보고서를 제출해, 이 기간 동안 위원장이 혼자서 보고서를 만지작거리면서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은 보고서를 제출하기 직전까지도 위원들과 종합의견(안)을 두고 계속 이메일로 협의하고 의견을 조율했었다. 따라서 보고서가 제출된 후 환경단체 대표로 참석했던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위원장이 한 달 이상 아무 일도 안하고 위원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갑자기 독단적으로 종합의견을 첨부하여 총리실에 제출했다는 비난을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1년 2개월에 걸친 조사단의 활동기간동안 소요된 총 조사비용은 약 8억 7000만 원이었으며, 이 기간에 경제성분과위원회의가 8회, 환경영향분과위원회의가 8회, 수질분과위원회의가 11회 개최됐고 전체회의가 11회 개최됐다.
이는 공식적인 회의를 의미하고 이외에, 분과위원회 조사결과를 공유하기 위한 위원장 주제의 분과위원장 회의, 위원들 간의 의견교환 이메일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때문에 14개월에 걸친 조사기간 동안 참여한 위원들은 조사활동에 거의 전력투구했다고 할 수 있다.


민간위원 중 3명의 위원들이 분과회의와 전체회의에 100% 참여하는 등 대부분의 위원들이 높은 참여율을 보였으나 참여율이 30~40%에 머무는 위원도 3명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둘 수는 없겠지만 3명의 위원 중 2명은 환경단체 추천 위원이었고 1명은 정부 추천 위원이었다.


마지막 전체회의 큰 관심 ‘취재경쟁’
3차례 이루어진 조사기간 연장은 분과위원회 활동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경제성분과는 1차 연장 기간인 5월 24일에 최종 분과회의를 개최함으로서 활동을 마무리했다. 수질 분과는 6월 17일, 환경영향분과는 6월 24일에 최종분과회의를 개최해 의견을 정리했다.


분과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된 후 전체회의를 두 차례 개최해 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정리했다. 6월 24일 오후에 개최된 제10차 전체회의는 각 분과위원회에서 제출된 분과위원회 보고서 초안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고 논의한 자리라는 점을 들어, 최소한의 기록요원들만 참여한 위원들만의 자체회의로 진행됐다.


그 전 5월 20일 서울대학교 호암생활관에서 개최된 제9차 회의에 환경단체가 참관해 발언기회까지 얻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전북도민들이 대거 상경해 회의에 참관했었다. 마치 공개발표회와 같은 형식이 돼버려 회의가 무려 7시간이나 진행되는 등 비효율적인 회의가 됐기 때문에 10차 회의는 비공개 회의로 진행했던 것이다.


그 후 서울대학교 호암생활관에서 개최된 제11차 마지막 전체회의는 당시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새만금사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회의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인지, 3개 TV방송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회의과정을 취재하려고 참여해 위원들이 회의장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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