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야사] 새만금 이야기 ③

1999년 공동조사단 활동 개시, 표결 반대했는데 나중에 발목잡아
온라인팀 eco@ecomedia.co.kr | 2015-12-08 08:58:28

1999년 공동조사단 활동 개시, 표결 반대했는데 나중에 발목잡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3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새만금사업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단이 1999년 5월 11일 제1회 전체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원만하게 개시했다. 앞서 설명한대로 조사단 위원의 구성은 환경영향 분야, 수질 분야, 경제성 분야 등 3개 분야로 구성돼, 환경영향분과에 9명(민간위원 7명), 경제성분과에 10명(민간위원 6명) 그리고 수질분과에 10명(민간위원 7명)이 활동하게 됐다. 관련부처 국장 등 정부 측 참여 위원들은 부처 특성과 참여하는 위원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해당 분과에 적절히 참여하도록 했다.

 


제1회 회의에서는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에서 작성한 조사단의 운영규정을 심의 의결하였고, 분과별 위원장을 선출하고 조사연구 일정에 대한 협의와 함께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 토의했다. 운영규정은 큰 틀에서 일반적인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자구수정을 하여 접수했으며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여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며칠간 밤샘 토론해서 결론 도출하자” 제의
그러나 가장 중요한 새만금 사업 시행여부에 대한 최종결론을 과반수 표결에 의해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환경단체의 추천으로 참여한 위원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총 30명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관계부처 국장 6명과 전라북도 환경국장, 그리고 농업진흥공사 이사급 2인 등 9명의 위원은 표결 시 모두 새만금사업 계속 시행에 찬성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과반수 표결이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원장으로서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중재안을 제안했는데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 참여위원들이 의결에 참여하지만, 사업의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의결에는 참여하지 않고 민간위원 20인만의 표결로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추가해서 위원장도 시행여부 결정에는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20인 위원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 중재안이 채택되어 운영규정이 확정됐는데 의논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민감한 사항을 표결로 결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며칠간 밤샘 토론을 해서라도 참여하는 위원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도출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위원들에게 정부 추천위원들은 일단 찬성하는 입장일 것이고 환경단체 추천위원들은 반대하는 입장일 것이지만 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이 입장에 변화가 있지 않으면 조사단 활동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니 그 당시 의견을 버리고 새롭게 새만금사업에 대한 조사와 분석에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이를 전제로 표결로 사업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발언하였는데 이 발언이 결국 후에 내 발목을 잡게 된다.


환경분과 위원장 교체돼 결과도 바뀐듯
3개 분과위원회 위원 중 가장 연장자를 분과위원장으로 하자는 제안에 모든 위원이 동의하였기에 분과위원장을 선출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분과별로 연장자를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보니 2명이 정부 추천위원이었고 1명이 환경단체 추천위원이

었다. 환경분과위원회는 당초 위원 중 연장자는 서울대 고 교수로 환경단체 추천위원이었는데 앞에 설명한대로 그 분이 참여를 못하게 되자 그 다음 연장자가 위원장이 됐는데 그 분은 정부 추천위원이었다. 분과위원장은 회의를 주관하는 역할이었기에 결론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칠 위치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만약 당초 안대로 고 교수가 환경분과 위원장이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조사단 운영과 조사 연구에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하는 가였다. 운영규정에 의하면 모든 경비는 새만금사업비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 ‘위원회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새만금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위원회이니만큼 제 3의 기관에서 예산을 확보하여 경비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거의 모든 민간위원들이 뜻을 같이 했다.


따라서 총리실에서 예산을 확보해 위원회 경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총리실은 사업예산이 없어 총리실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고 새만금사업비에서 소요경비를 지원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경비 집행 절차로 불편겪어
위원들을 더욱 불편하게 한 것은 경비 집행 절차였다. 조사에 필요한 경비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조사위원들이 위원장의 결재를 득한 후 농업진흥공사에 경비지급을 의뢰하면 공사가 새만금사업비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급하도록 돼 있었다.


이 경우 위원들이 사업주체로부터 직접 경비를 받는 형태가 돼 이런 체제에서 사업 시행여부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위원들이 최종적으로 계속 시행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질 경우에도 농어촌진흥공사에서 조사연구비를 지원받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버릴 수 없었다. 따라서 경비 집행 절차를 조정하여 위원들은 위원장 앞으로 경비지급 의뢰를 하고 이를 근거로 위원장이 농업진흥공사에 경비를 받아 위원장 명의로 위원에게 경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새만금사업 환경평가 공동조사단보다 6개월 후에 출범했던 동강댐 건설 타당성 조사단은 KIST 원장이 위원장을 맡았는데, 우리의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여 수자원공사와 KIST 사이의 계약에 의해 모든 예산을 KIST에 위탁하여 KIST에서 조사경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사실 나도 원장으로 있던 KEI에서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방안을 고려했었으나, 그러면 KEI가 공동조사단에 참여하는 격이 되고 행정 지원을 도맡아야 하는 부담이 있어 이 방안은 애초부터 제외했었다. 어떤 절차이든 결국 사업자로부터 경비가 지급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으나. 위원장은 직접 조사에 참여하지 않고 시행여부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같은 절차가 당시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또 한 가지 문제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위원회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조사단의 본회의와 분과회의 등 모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당시 최대 관심사였던 새만금사업 공동조사단 활동은 첫 번째 회의부터 모든 언론사가 출동하는 등 취재 경쟁이 대단했었다.

 

 

그러나 위원들 모두 회의가 공개로 진행되는 데에는 부담을 느껴 비공개하기로 합의하고 TV방송 등 언론사들에게는 개회하는 장면만 공개한 후 모두 퇴장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환경단체 대표들도 퇴장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 환경단체가 적극 반대했던 대형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과 동강댐건설 사업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새만금사업은 녹색연합이, 동강댐은 환경운동연합이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녹색연합의 사무총장이었던 장 교수가 조사단의 위원으로 직접 참여했으며 장 교수는 환경단체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수질분야 전문가로서 조사연구 활동도 수행했다. <계속>

[환경미디어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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